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돌아선 남자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절규

치마를 걷고[褰裳(건상)] 작자 미상

그대 날 사랑하고 생각해 주신다면 子惠思我(자혜사아)

치마 걷고 강을 건너 따라 가겠어요 褰裳涉溱(건상섭진)

하지만 그대 나를 생각지 않는다면 子不我思(자불아사)

어찌 다른 사람, 다른 사람 없겠어요 豈無他人(기무타인)

저 미치광이, 완전 돌았구나, 흥. 狂童之狂也且(광동지광야차)

그대 날 사랑하고 생각해 주신다면 子惠思我(자혜사아)

치마 걷고 강을 건너 따라 가겠어요 褰裳涉洧(건상섭유)

하지만 그대 나를 생각지 않는다면 子不我思(자불아사)

어찌 다른 총각, 다른 총각 없겠어요 豈無他士(기무타사)

저 미치광이, 완전 돌았구나, 흥. 狂童之狂也且(광동지광야차)

*溱(진), 洧(유): 강의 이름.

그 음란성으로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는, 하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은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연애시다. 보다시피 작중 화자인 여인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다. 애인이 만약 사랑해주면 치마를 걷고 큰 강물이라도 건너 애인을 따라나서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남자 품에 확, 안겨버리겠다고 은근히 공갈을 치고 있다. 이 세상에 남자들은 하늘의 별보다도 더 많으니까. 그 많은 남자들이 죄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 속의 가정(假定)이 현재 상황 속의 가정이란 점이다.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이 돌아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대놓고 상대방을 미치광이라고 규정하면서,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돌아오면 치마를 걷고 큰 강물이라도 건너서 따라나서겠다고' 절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치마를 걷는다는 것은 하라는 대로 뭐든지 죄다 하겠다는 뜻. 그러니까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뜨겁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으면 '다른 남자 품에 확 안겨버릴 거라고' 어름장을 놓으며 밀당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여인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같이 멋진 여인을 배반한 남자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뒤범벅이 되어 격렬하게 들끓고 있을 뿐이다. 특히 각 연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한 여인의 미묘한 심리를 내용으로 뒷받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호흡과 리듬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넉 자로 이어지던 각 구절의 글자 수가 여섯 자로 돌변하면서 호흡과 리듬이 아주 급박하게 휘몰아치고, 바로 그 급박한 호흡과 리듬 속에 격한 분노로 치를 떨고 있는 여인의 아픈 몸부림까지 아주 또렷하게 포착되어 있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대와 내가/ 서로 뒤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대가 알게 될 테니까요./ 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요." 도나 뽀쁘헤의 시 '한순간만이라도'의 전문이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여자를 걷어차고 딴 여자 좇기에 여념이 없는 미치광이여! 부탁한다, 제발 그러지 마라. 그러다가 난데없이 한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한겨울에 돌연 우르르 쾅쾅 천둥이 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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