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표트르의 훈수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EEF) 기조연설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 북한이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을 쏘고 6차 핵실험을 한지 며칠 뒤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 해결에 러시아의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내가 더 잘 안다"는 푸틴의 따가운 훈수만 들었다.

동해로 열린 러시아의 극동 항구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의 이름은 '표트르 대제'만(灣)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러시아의 서쪽 끝,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같은 이름이다. 표트르 1세, 표트르 대제로 불리는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에서 나온 지명이다. 동해에만 시선이 고정된 우리에게 낯설다 못해 이질적인 이름이다. 그럼에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18세기 러시아의 운명을 뒤바꾼 표트르라는 인물이 들려주는 훈수 때문이다.

러시아 역사는 표트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유럽 변방이었던 러시아 역사에서 개혁 군주 표트르의 등장은 러시아의 고대와 근대를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1725년 표트르가 죽자 모든 러시아 국민이 기뻐했다. 외골수에 무자비한 폭군 치하에서 벗어나서다. 표트르는 외동아들 알렉세이 황태자마저 반역죄로 몰아 처형할 만큼 잔혹한 군주였다.

핀란드만 어귀의 새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이다.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낙후한 러시아를 바꾸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표트르는 새 수도 건설에 동원돼 혹사당하다 죽은 농노 12만 명을 네바강 늪에 던져 넣었다. 101개 섬에 500개의 다리가 놓인 아름다운 물의 도시가 간직한 어두운 역사다.

표트르 통치 시기 국민들은 그가 벌인 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군주로만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를 개혁하고 근대화를 앞당긴 인물이다. 서유럽의 앞선 조선 기술을 배우려고 암스테르담 조선소에서 열 달간 일할 정도로 개화에 온몸을 던진 군주였다. 바다만이 살길이라고 본 그는 패권국 스웨덴을 억누르고 발트해로 나아갔다. 이런 공적에도 폭정의 그늘은 짙었다. 하지만 역사는 '대제' 칭호를 붙여주었고, 러시아 서쪽과 동쪽 양끝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어지럽다. 북한 6차 핵실험은 대한민국 안위에 대못을 박았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외치며 방치한 결과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침을 튀기며 여전히 내부의 전쟁에 빠져 있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국가 안보와 국민 생존이 아니라 정략적 이해다. 대한민국 처지가 꽁지 말아 넣은 개처럼 어쭙잖은 데도 정치는 허황한 입씨름에 여념이 없다.

그 사이 고위 공직자 7명이 인사 청문 문턱에서 낙마했다. 야당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또 "우리 당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며 기고만장했다. 그럴수록 청와대와 여당은 안보 문제 등 현안마다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했다. 이런 정부와 지도자를 지켜보는 국민이 느끼는 것은 처절한 낭패감이다. 위태로운 국가 운명 앞에 유연한 전략적 사고도, 배짱도 없이 외고집만 부리고 있어서다.

쓸만한 패도 없고 거의 곤마 상태에서 대통령이 전술핵 반입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북한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리 "이러면 대화가 불가능"을 외쳐도 돌아오는 건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라는 냉소뿐이다. 동맹의 신뢰는 비끌어졌고, 중국'러시아의 협박과 냉대는 갈수록 노골적이다.

대한민국은 수백만 명의 뼈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래서 더는 전쟁의 참화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들이 입으로만 평화를 외치거나 대중 영합만으로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한 나라는 결사의 의지와 원대한 목표, 주도면밀함에서 나온다고 역사는 가르친다. 이는 표트르의 훈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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