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탄광촌 고향 문경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담벼락 밑에 쪼그리고 앉아 배고픔을 달래는 아이들의 초라한 모습이며, 휘발유 냄새가 좋다고 비포장 길에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자동차의 꽁무니를 쫓아가던 모습 말입니다. 그때 저에게 막연한 꿈과 희망이 있었다면 깨끗이 포장된 고향의 도로 위에 멋진 자동차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고규환(75) 아세아시멘트 고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같이 표현했다. 고희를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문경영인으로서, 또 대학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고 고문은 1942년 문경시 산양면에서 태어나 문경고와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아세아시멘트에 입사했다. 이후 아세아시멘트 부사장, 아세아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주력회사인 아세아시멘트 대표이사 사장에까지 오르는 등 전문경영인으로서 아세아시멘트를 업계 선도기업으로 키워내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의 삶이 총소리가 나지 않는 전쟁이라고 하잖아요.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전략과 전술이 잘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75세의 나이로 20여 년간 CEO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몸담은 기업의 문화와 경영 환경에 신속히 적응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경영목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 고문의 학구열은 업계에서도 소문이 나 있다. "인간은 배움으로 시작해 배우면서 끝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끝없이 배우고 성실히 노력하는 마음으로 축적된 지식과 경륜을 바탕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움이 개인이나 기업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1995년 충남대에서 건축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대전대에서 사회복지학과 경영학 석사 학위도 잇따라 받았다. 그의 학구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0년에는 대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것도 모자라 그해 3월 또다시 대전대 행정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그가 보유하고 있는 석사와 박사 학위는 무려 5개나 된다. 여기다 지난해 11월 30일 대전대에서 명예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과분한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또 1970년 건설교통부로부터 건축사 면허를 취득한 것을 시작으로 건축시공기술사 면허, 건설안전기술사(과학기술부) 면허를 각각 취득했고, 2004년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배움이 즐겁다는 고 고문은 '나눔' 행보도 남다르다. 나눔은 선택이 아닌 사회적 의무라는 것. 그의 나눔에는 '물질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배움이 사람을 만드는 사회를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는 철학이 녹아 있다. 돈 버는 기쁨보다 나누는 기쁨을 알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2014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웃돕기성금 1억원을 기부하면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고 고문은 "대학에서 오랜 기간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돈 걱정을 하는 제자들이 많아 안타까웠다"면서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 차원에서 기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 고문의 나눔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나눔 실천에는 애틋한 사연도 담겨 있다. 그는 고향 문경의 모교는 물론 27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의 모교인 문경여고에까지 거액의 장학금을 내놓아 화제를 낳았다.
문경여고는 고 고문이 내놓은 3억2천만원으로 그의 부인 이름을 넣은 '이화 김영숙 장학회'를 설립했다. 이화(배꽃)는 문경여고의 교화이며 김 씨는 문경여고 5회 졸업생으로 1990년 별세했다.
고 고문은 자신의 모교인 문경고와 대전대, 한양대 등에 각각 문경장학회, 대경장학회, 고규환장학회 등을 만들어 폭넓은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 장학회에서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장학금 가운데 고 고문이 개인적으로 내놓는 금액만 매년 8천만~1억원에 달한다. "어릴 때 어머님의 평소 생활 속에서 보고 느꼈던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 그리고 어려운 형편이었는데도 저희 5남매에 대한 남다르신 교육열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지금 우리 고향 문경은 시골 도시에서는 국내 최초로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라는 국제행사를 성공리에 치러낼 정도로 발전했고 2021년에 고속전철이 개통되면 더욱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고 고문은 "인생의 황혼기에 배움과 나눔을 통해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며 "나눔과 배움의 끝이 내 삶의 끝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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