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왕릉 돌며 풀어가는 신라 1천년 역사…『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 이재호 지음/ 힐링아트 펴냄

BC 57년에 건국된 신라의 존속기간은 992년. 그 사이 시조 박혁거세에서 마지막 경순왕까지 56명의 왕이 거쳐 갔다. 이 중 37왕의 능묘가 확인 또는 추정되고 19왕의 능묘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행작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저자 이재호 씨는 신라의 왕릉을 11개 코스로 나눈 뒤 여러 해 동안 구간을 답사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소감을 책으로 기록했다.

제1장 '신라의 건국과 패망'은 박혁거세왕릉에서 지마왕릉 코스와 삼릉에서 경덕왕릉으로 오르는 길을 소개하고 있다. 혁거세가 동해 바닷가에서 한 사제(司祭)의 도움을 받아 고대왕국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일성왕릉-포석정-지마왕릉을 돌아본 작가는 삼릉-경덕왕릉을 거치며 1장을 마무리한다. 미약했던 신라를 연합국가로 이끈 아달라왕과 신라문화의 절정기를 수놓은 경덕왕, 그리고 쓰러져 가는 신라를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몸부림친 신덕, 경명, 경애왕릉을 돌아보고 있다.

2장은 경주 남산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불국토의 염원, 경주 남산 편'. 남북으로 10㎞, 동서로 4㎞를 길게 뻗은 남산은 곳곳에 많은 유적을 품고 있다. 저자는 오릉-천관사지-화백정-보리사를 거쳐 헌강왕릉으로 향한다. 천관사는 신분 차이로 김유신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천관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사당. 젊은 시절 과오를 뉘우친 김유신은 용맹정진하여 통일의 주역이 되고 여승이 된 천관녀는 유신을 위해 기도하다 죽었다. 눈 덮인 헌강왕릉 앞에서 저자는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글읽기를 좋아했다'는 왕의 재능을 애도한다. 재위 11년 동안 경주는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나 헌강왕 이후 신라는 본격적인 권력투쟁이 시작되고 농민 반란이 시작돼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3장은 반도의 동쪽에 치우쳐 지리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넘어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원동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5길' 입구에서 저자는 경주 최부잣집 앞을 지난다. 권력을 버리고 명예를 얻었던 처세법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최 씨 가문의 도덕성에 경의를 표한다.

'6길'은 아버지 복수 쿠데타로 왕이 된 신무왕, 6세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안정적으로 국정을 꾸려간 효소왕, 36년 재위기간 제도의 정비와 문물 발달을 이룬 성덕왕 스토리를, '7길'에서는 지금의 신라적 분위기를 완성한 효공왕릉을 돌아본다.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왕위를 물려받은 효공왕이 신라 말기 궁예, 견훤에 휘둘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적고 있다.

제4장은 덕(德)의 정치를 펼쳐 마침내 통일 꿈을 이루고 후손들에게 빛나는 유산을 남긴 '찬란한 신라의 꿈'을 찾아가는 길이다. 반월성-봉황대(8길), 태종무열왕릉-민애왕릉(9길)을 걸으며 삼국통일의 주역들을 만난다.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를 이루었지만 로마처럼 정복국가로 행세하지 않고 덕을 펼쳤던 군주들의 통합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10길'에서는 김유신묘-흥덕왕릉, '11길'에서는 반월성-문무왕릉 코스를 걷는다. 구국의 명장 김유신묘 앞에서 저자는 흠모의 눈길을 아끼지 않는다. 박혁거세에서 문무왕릉까지 이어진 신라왕들에 대한 모든 평가는 대왕암 앞에서 맑은 소주 한잔을 부으며 끝난다.

저자는 신라왕조 1천 년 56왕의 역사를 왕릉과 왕릉을 연결해 그나름의 시각으로 풀어가고 있다. 영웅, 위인들의 능(陵)이나 묘 앞에서 저자는 경의와 존경을 나타내고, 시대를 잘못 만난 지도자나 혼란기의 군주에게도 애정 어린 시선은 이어진다. 치적, 덕업이나 과오, 실정이 모두 역사를 이루는 벽돌이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 울산문화재연구원 이사, 반구대사랑시민연대 대표, 경주 왕의길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359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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