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김광석 타살 의혹' 소동이 남긴 것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시화법률특허사무소 미국변호사. 원전특허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경희대 법학과 졸업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시화법률특허사무소 미국변호사. 원전특허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경희대 법학과 졸업

음모론에 너무 쉽게 빠지는 사회

밑바닥에 공권력 불신 자리 잡아

신뢰 결여된 국가 발전할 수 없어

국민들은 냉정한 판단력 가져야

'김광석 타살 의혹'이 막 언론을 타기 시작할 때였다. 방송에 출연한 나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에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다. 김광석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 (나를 포함한) 팬들의 안타까움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석연치 않다는 점을 넘은 타살 의혹 주장이다. 말이 좋아 '의혹'이다. 사실상 부인 서해순 씨를 살인자로 단정하는 것과 진배없다. 게다가 딸의 사인이 단순 병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고의로 폐렴을 유발하거나 아픈 걸 방치해서 죽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수사나 부검 등 국가기관의 공식 기록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특별한 증거도 없으면서 이를 부정하는 건 위험하다. 특정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실이라면 서 씨는 졸지에 무시무시한 부녀 살해범이 되는 셈 아닌가.

이후 전개된 상황은 아는 바대로다. 신중론은 그야말로 소수의견일 뿐이었다. 서 씨를 부녀 살해범으로 확신하는 여론은 들불처럼 제어할 수 없게 번져버렸다. 물론 서 씨의 해명이나 정황상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하지만 의심과 살인의 확신은 차원을 달리한다.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이미 대중들의 마음속에 서 씨는 희대의 악녀로 각인된 다음이다. 서양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랬을까. 소문이나 익명의 고발에 의해 누군가 마녀로 지목된다. 잡혀온 여성의 손발을 묶어 물에 빠뜨린다. 물은 깨끗한 성질을 지녔으므로 마녀라면 물이 거부한다. 떠오르는 여성은 따라서 마녀로 화형에 처해진다. 가라앉은 여성은 마녀가 아니므로 무죄이다. 그렇지만 이미 익사한 다음이다. 마녀로 지목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운명이다. 이런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는 패턴을 보인 것이 이번 사건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 우리가 앓고 있는 심각한 병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 사회가 맹목적 음모론에 너무 쉽게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경찰, 부검의, 검찰 모두 임무를 소홀히 하거나 공모하여 타살 의혹을 묵살한다?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다. 이런 이성적 판단은 음모론에 의해 손쉽게 제압된다. 서 씨에 대한 수사 의뢰에는 현직 여당 국회의원도 동참했다. 무언가 정치적 음모의 냄새까지 풍기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들불의 불쏘시개가 된다. 전문가들의 의견보다 인터넷 댓글류의 사이비 여론이 더 중시되는 사회, 사실과 주장이 구별되지 않고 뒤섞인 사회, 너도나도 가짜 뉴스의 유통 채널이 되는 사회. 우리 사회의 이런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그 밑바닥에 자리한 것은 거대한 '불신'이다. 국가기관과 공권력이 무언가 숨기고 있더라는 경험은 불신의 자양분이다. 이 같은 신뢰의 추락을 방치한 채로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예를 들지 않아도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결여된 채로 국가가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불신의 치유는 국가기관, 공권력이 투명해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곰팡이처럼 음습한 음모론의 가장 강력한 퇴치제는 투명함이다. 지금부터라도 가능한 한 최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함으로써 신뢰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파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력이다.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을 보지 못하고. 콩 두 알이 귀를 막으면 우렛소리를 듣지 못한다"('갈관자')고 했다.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일에 현혹되어 문제의 본질이나 전모를 놓치기 쉬움을 경계하는 말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진위를 가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스스로 해야 할 과제라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정치적 사안이든 사회적 문제든 선뜻 어느 한쪽에 몸을 담지 않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취할 수 있다. 비슷한 사건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모습만 달리한 채 지금도 진행형이다. 일상에서 우리의 눈을 가린 나뭇잎과 귀를 막은 콩을 분별하려 애를 써야 한다. 한바탕 소동에서 그런 정도의 교훈이라도 얻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며 느끼는 씁쓸함이 그나마 위로받을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