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가게에서 "손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어긋난 국어사용도 문제지만, 주와 객이 바뀐 잘못된 높임말이 불편하다. 요즘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 하더라도 예(禮)의 지나침은 듣기에 거북할 수밖에 없다. '논어'에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삼가되 예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하되 예가 없으면 혼란하고, 강직하되 예가 없으면 너무 급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예를 잃어버리고 겉으로만 상대를 배려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척하지나 않는지? 그리고 만용에 가까운 잘못된 용맹스러움과 나 홀로 옳고 바르다며 한껏 들떠 있지나 않은지를 고심하게 된다.
일전에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영어를 국어보다 잘한다는 모 장관은 '우리나라'나 '우리'라고 해야 할 것을 '저희가' 또는 '저희'라 했다. 그 횟수가 몇 번씩 반복되었으니 무척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가'가 자기 부서 업무에 대한 답변에서 나왔다면 모를까 우리나라를 대변하는 경우엔 참으로 듣기 민망하다. 의원 누구도 이를 지적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회는 국가 최고 기관이고 한 나라의 체면과 수준을 나타내는 곳이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다행한 것은 공영방송에서 출연자가 '우리나라' 대신 '저희 나라'라고 할 때, 대부분의 진행자는 즉시 이를 바로잡아주거나 다시 언급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따금 학교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발표자들이 '우리나라'나 '우리 학교'라 해야 할 것을 '저희 나라'나 '저희 학교'라고 한다. 긴장해서 그러려니 했다가도 연속으로 언급할 때면 그만 실망을 넘어 그 사람의 발표 내용까지도 듣고 싶지 않게 된다. 발표장에서 저희라고 언급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여러 기관이나 다양한 학교의 구성원들이 연합으로 모였을 때이다.
황당함은 이뿐만 아니다. 발표자가 자신이 몸담은 직장이나 부서에서 동료를 대상으로 언급할 때도 당연한 듯 '우리 학교'를 '이 학교'라 서슴없이 말한다. 귀에 거슬리지만, '저희 학교'보다는 낫다며 애써 나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 '우리 학교'라 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조언할 때까지 한참이나 걸렸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일상에서 누구나 발표자로 나설 수 있고 상대를 존중해야 할 때가 있다. 온갖 노력을 했지만, 발표 능력이 부족해서 청중에게 만족스럽게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발표자로 나설 때는 우리말의 기본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사람 면전에서 사물을 더 높이는 것도 삼가야 한다. 적어도 공적인 발표장이나 수업에서 강의자는 이를 명심해서 전달해야 할 것이다. 공손과 예도 지나치거나 격에 맞지 않으면 민망스러움을 넘어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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