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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학가선용(鶴駕仙容)과 학가선객(鶴駕仙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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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능 시험에 출제된 이정환의 시조 '悲歌'(비가)는 재야에 있던 선비가 병자호란의 치욕과 세자가 볼모로 잡혀가는 상황에 대한 원통함을 표현한 연시조이다. 제1수는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는 소현세자의 모습을 꿈속에서 본 소회를 밝히면서 '반갑다 학가(鶴駕) 선객(仙客)을 친히 뵌 듯 여라'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鶴駕(학가) 仙客(선객)'에 대해 한 학원 강사가 비슷한 한자인 '鶴駕(학가) 仙容(선용)'을 잘못 쓴 것이라는 이의제기를 하였고, 한 언론에서는 이 이의제기의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였다. 그 뉴스에는 출제자의 자질이 없느니 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문학 작품의 경우 여러 이본들이 존재하고 필사본인 경우 다르게 판독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맞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초본이 확인이 되면 최초본을 기준으로 하고, 작가가 나중에 오탈자를 교정하고 미세한 표현의 조정을 한 경우에는 나중에 나온 기록을 기본으로 한다. 판본의 선후 관계의 확인이 어려운 경우에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의 주도로 편찬된 기록을 기본 텍스트로 삼는다. 그런데 이 기본 텍스트는 표기와 어휘 등이 현재와 많이 달라 교육의 현장에 그대로 가져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현대어에 맞게 약간의 수정을 하는데, 고전 시가의 경우 운율과 예스러운 멋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당연히 표현이나 표기는 약간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정환의 '비가'가 학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31년 5월 16일 자 동아일보에 이은상 시인이 '송암유고'에 있던(원본의 소재는 알 수 없다.) 시조와 한역시를 소개하면서이다. 그후 영남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셨고 시조 분야 권위자였던 심재완 선생이 집대성한 '교본역대시조전서'에도 실리게 되었는데, 제2수에서 동아일보에서 '北來使者'(북래사자)라고 한 것을 '此來使者'(차래사자)라고 한 것과 같은 미세한 차이가 난다.

이 두 본에서는 모두 제1수에서 '鶴駕仙容'(학가선용)이라고 되어 있지만 최근 방대한 자료 수집과 정밀한 고증으로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고시조대전'에는 '鶴駕仙客'(학가선객)으로 기록하고 있다. '鶴駕'(학가)라는 말은 주나라 영왕의 세자가 도술을 닦아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다녔다는 데서 비롯된 말로 왕이 타는 가마인 어가(御駕)와 짝을 이루어 세자가 타는 가마를 의미한다. 그 유래를 알면 '학가를 탄 신선(鶴駕仙客)'이나 '학가를 탄 신선의 용모(鶴駕仙容)'나 모두 소현세자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 타당한 이유가 있다. 내가 출제자였어도 충분히 고민하고, 최근 인정받고 있는 자료를 기본 텍스트로 썼을 것이다. 이런 사정들은 알아보지 않고 일단 논란을 만들고 보는 우리나라 언론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여론을 보면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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