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곳, 내 마음의 안식처] (21)정지돈 소설가-경주 서출지

관광객 북적이는 고도지만…여기는 정적

이요당에서 본 서출지의 모습. 이야기가 있어 넓어진 공간이다.
이요당에서 본 서출지의 모습. 이야기가 있어 넓어진 공간이다.

왕가 불륜'복수 이야기 흥미진진

소나무'배롱나무 차례로 이어져

바람소리 들으며 스스로 돌아봐

"경주 서출지가 마음속 안식처가 될 것 같네요."

'건축이냐, 혁명이냐' '창백한 말' 등의 작품으로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등 굴지의 문학상을 휩쓴, 젊은 소설가 정지돈은 경주 서출지를 '마음의 안식처'로 추천했다.

경주 남산 서편에 포석정과 삼릉이 있다면 동편에는 서출지가 있다. 화랑교육원을 지나 통일전을 바투 옆에 둔, 다소 왜소해 보이는 연못. 그러나 무게감이 실린 곳이다. 불륜과 복수, 정의 실현이라는 '반전 드라마'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서출지에 얽힌 '반전 드라마'는 이랬다.

'왕이 행차하시는데 까마귀가 몰려들어 난리였다. 무사들이 까마귀를 쫓아 따라간 자리, 그 연못이 서출지였다. 이야기가 되려는지 하필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난다. 잠수에 능하셨던 어르신은 편지를 왕에게 전하라고 한다. 편지 내용이 납량물 암호 수준이다. '편지를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고,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는다.' 봉투를 열어보니 더 가관이다.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집을 쏘라)이라 쓰였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집을 향해 활을 쐈다. 거문고 집을 열어보니 한 승려가 화살을 맞고 굴러 나왔다고 한다. 예언서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書出池)다.

신라 소지왕이 불륜을 이유로 선혜황후를 폐위한 기록과 서출지 설화다. 순간 정지돈의 소설들이 서출지 위에 함께 떠올랐다. 팩트와 상상이 결합돼 작가가 지어낸 글줄인지, 실제 있었던 일의 기록인지 헷갈리는 문장들이 서출지 위에 둥둥 떠다녔다. 정작 이곳을 안식처로 꼽은 이유를, 작가는 '조용해서'라고 했지만.

"경주는 유명한 만큼 사람이 많다. 그에 비해 서출지는 쉬어가는 곳인 양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는다. 말하는 소리가 안 들리는 정적이 좋았다. 바람소리만 들리는 게 좋았다. 여름보다 늦가을보다 겨울이 좋다. 앉아 있으면 바람소리만 들리고. 오롯이 정적을 느낄 수 있었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가 생겼다. 풍경이 지나치게 압도적이거나 예술품이 있거나 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풍경이 멋지면 보느라 정신이 없다. 자극을 주진 않았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작가의 말마따나 서출지는 조용한 곳이었다. 200m가 채 못 되는 둘레길을 걸었다. 소나무가 못 주위를 둘러싸나 싶더니 배롱나무가 릴레이로 배턴 터치했고, 곧 갈대가 못 밖으로 뛰쳐나올 듯 우거졌다. '이요당'이라는 오래된 집이 못 가장자리에서 마침점을 찍고 있었다.

서출지는 조용했기에 작은 움직임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이었다.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지휘자는 바람이었다. 겨울 갈대는 바람에 리듬을 타며 마른 소리를 만들어냈다. 웅크린 연꽃줄기는 여름 독주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 땡볕 바람엔 연꽃이 흔들리겠구나. 흔들거리는 갈대 사이로 푸드덕대는 오리 몸짓은 추임새처럼 자연스러웠다. '정중동'(靜中動)은 국어시험에서나 필요한 말이 아니었다.

서출지는 뜻하지 않게 지척에 있는 통일전 화랑정 앞 연못을 왜소하게 만들었다. 열대어에 견줄 정도로 색색의 잉어들이 노닐던 화랑정 앞 연못. 그러나 그곳엔 신라 1천 년의 대반전 서스펙트 스릴러, 까마귀떼 이야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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