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다면 포항 구룡포와 호미곶 일대는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한다. 꼬리 가장 뾰족한 부분에 자리 잡은 곳이 호미곶이고, 동해와 만나는 한반도 동쪽 끝 마을은 구룡포 석병리가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포항 끄트머리로 향하는 이유다. 기왕이면 가장 먼저 새해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에 담고 싶어서다.
만약 북적이는 인파가 싫어 새해 첫날 동해안을 방문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포항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아직은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다 보니 해안 곳곳에는 새해의 부푼 희망과 기대감이 차가운 공기에 묻어난다. 더구나 겨울 포항에는 과메기와 대게 등 제철을 맞은 먹거리와 함께 볼거리도 다양해 하루를 보내기 손색없는 여행지다. 지난해 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의 아픔을 딛고 복구에 여념이 없는 포항시민들에게 작으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석이조 여행이기도 하다.
◆구룡포의 맛, 과메기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가 1마리가 떨어졌다는 전설이 숨어 있는 구룡포. 겨울철 '구룡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과메기'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최상의 맛을 내기 시작하는 과메기는 겨울 최고의 별미다. 한때는 고작 해야 경상도 남성들이 소주 한잔 기울일 때 먹는 음식이었지만, 요즘은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전국에서 남녀노소 과메기를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려 기름진 맛과 함께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과메기. 특히 지난해 연말 발생한 지진으로 전국 각지에서 '포항 경제 돕기' 움직임이 일면서 한동안 과메기의 인기가 크게 치솟았지만 지진 여파가 잠잠해지면서 과메기 소비 열풍도 함께 시들해졌다.
구룡포는 과메기 전체 생산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구룡포=과메기'라는 공식이 성립돼 있다. 그것은 구룡포의 지리적인 특성 덕분이다.
김영헌 구룡포과메기조합 이사장은 "구룡포에서 부는 바람은 백두대간을 넘어오는 북서풍으로 영일만을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다시 한 번 산을 넘어오면서 습기가 사라지는 덕분에 구룡포는 과메기 말리기에 최적지"라며 "포항에서 구룡포로 들어설 때 바람이 다르고, 반대로 호미곶에서 구룡포로 넘어올 때도 바람이 다른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 새해 포항서 놀아볼까
바닷가와 구룡포 마을 곳곳에서 주렁주렁 꽁치가 널려 있는 과메기 덕장을 만날 수 있다. 바닷가를 따라 길이가 긴 구룡포의 특성상 어디서든 해풍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과메기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밖에서 말리기 시작하는데, 보통 하루는 햇볕에 말리고 나머지 이틀 정도는 그늘에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 이사장은 "햇볕을 너무 받으면 기름이 산패해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그늘에 말리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각 업체마다 저마다 비법으로 보다 맛있는 과메기를 만들기 위해 경쟁한다"고 했다. 최근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사투리로 '베진 과메기'라고 불리는 편과메기이다. 옛날에는 배를 가르지 않고 내장이 그대로 들어 있는 꽁치를 그대로 말린 통과메기가 전부였지만 1970년대 후반 무렵부터 편과메기가 등장하기 시작해 이제는 아예 대세가 됐다. 건조가 쉬운 베진 과메기가 보급되면서 과메기 생산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내장을 깨끗이 발라내고 먹기 좋게 포를 뜨며, 비린내를 줄이기 위해 염도를 맞춘 물에 세척한다. 구룡포 토박이인데다 지역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김 이사장은 "과메기 스토리텔링 사업을 위해 편과메기의 유래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면서 "40년 전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시절에도 시장 아주머니들이 편과메기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하나 둘 퍼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바다 내음 가득한 미식여행
구룡포에서 유명한 것은 비단 과메기뿐이 아니다. 대게는 울진과 영덕이 서로 '지역특산물'이라며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구룡포가 전체 동해안 대게 전국 위판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큰 시장이다. 지금 구룡포를 찾으면 바닷가와 구룡포 시장 곳곳에 대게를 찌는 달큰한 냄새가 코를 파고든다. 대게는 역시 바닷가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싱싱하게 살아있는 대게를 금방 쪄 내면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훨씬 적을 뿐만 아니라 살이 달콤 탱글하게 입안에 감겨든다.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구룡포항 새벽 어시장을 찾아봐도 좋다. '해녀'하면 흔히 제주도를 떠올리지만 구룡포에도 꽤 많은 해녀가 있다. 포항시에 등록된 해녀만 1천 명 이상이다. 김 이사장은 "제주 4'3 사건 이후 뭍으로 나온 해녀들이 꽤 있었는데 이 중 700명 정도가 구룡포에 정착했다"며 "현재는 500명 정도의 해녀가 구룡포에서 물질을 하고 있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10~20년 후에는 자취를 감출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로 만든 전복죽과 성게비빔밥 등 다양한 음식들을 판매하는 '해녀' 간판을 단 식당도 눈에 띈다.
고래고기 역시 구룡포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다. 고래는 인근 울산 장생포가 유명하지만 사실 구룡포읍과 호미곶면의 경계에 위치한 다무포 앞바다는 고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구룡포에는 오래된 고래고기 전문점이 몇 곳 있다. 고래고기는 소고기와 마찬가지로 무엇 하나 버리지 않는 알뜰한 음식으로 고래 불고기, 고래국밥, 수육 등의 메뉴가 있다.
구룡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음식으로 '모리국수'도 있다. 해물 칼국수의 일종인데 갖은 해물과 고춧가루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내는 방식이다.
◆배부르게 먹고 체험'관광'산책
호랑이 꼬리에는 볼 것도 놀 것도 많다. 포항시가 어촌마을인 구룡포에 문화예술의 옷을 입히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과메기 맛을 봤으니 그 유래가 궁금해진다. 4층 규모로 지어진 '과메기 문화관'을 통해서는 과메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 특산물 판매장, 해양체험교실, 기획전시실, 과메기 홍보관, 과메기 역사관, 해양생태관 등 다양한 볼거리와 학습자료, 체험코너가 마련돼 있다.
포항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구룡포 생활문화센터 '아라예술촌'도 최근 많은 이들이 찾는 문화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아라예술촌은 1층에 다목적홀, 문화사랑방, 창작공방이, 2층에는 동아리실과 문화놀이터, 예술창작실이 들어서 있다.
또 구룡포문화특화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마을 곳곳에 다양한 조영물과 생태정원 등이 들어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의 쉼터가 되고 있다.
일본인가옥거리를 돌아봐도 좋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구룡포항을 만들고 동양 최대의 어업전진기지를 건설했던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았던 흔적이다. 포항시는 2011년 457m 거리에 있는 건물 28동을 보수해 일본인가옥거리를 조성했다.
15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호미곶은 새천년기념관과 등대박물관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유명한 조형물인 물속 '상생의 손' 옆에 데크가 조성 돼 물 위를 산책하는 묘미도 즐길 수 있다.
장길리복합낚시공원에서도 시원한 동해 특유의 장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강태공들의 낚시 포인트로 유명한 보릿돌 갯바위까지 일직선 데크를 놓아 누구나 쉽게 바다 한가운데 있는 보릿돌 위에 나가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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