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썩은 사과

스마트폰의 신기원을 연 '애플'이 수세에 몰렸다. '배터리 게이트'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특정 부품의 결함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 애플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악덕 상혼이 똬리를 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 의혹의 실체가 드러난 때문이다.

아이폰 6와 6S, SE 등 구형 아이폰 모델에서 사달이 났다. 지난해 3분기 애플이 iOS 11 업데이트를 실시한 후 구형 기기에서 급격한 성능 저하가 발생했다. 갑자기 전원이 꺼지는 등 배터리도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배터리 게이트'로도 불리지만 논란의 핵심은 아니다. 애플은 이를 '사용자 적응현상'으로 둘러대며 뭉개기에 나선 것이 화근이다.

아이폰 유저는 더 이상 나긋나긋하지 않다. 애플이 "신제품 판매를 위해 일부러 성능을 떨어뜨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음에도 유저들은 고객 몰래 전화기에 코드를 삽입한 사실상 '해킹'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노후 기기 교체를 유도하는 고의적인 성능 조작이라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연말 우리 돈 30조원에 가까운 애플 시가총액 140억달러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소비자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애플은 전 세계에서 집단소송에 직면했다. 미국 연방법원에는 약 1천조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이 제기된 데 이어 프랑스와 벨기에, 이스라엘, 호주 등 곳곳에서 줄소송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24만 명이 애플의 책임을 묻는 소송에 참여했다.

애플은 혁신과 공감, 창의성을 인정받아 크게 성장한 기업이다. 하지만 지금의 애플은 이 같은 기업 철학과 가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오만불손' 기업으로 거의 굳어지고 있다. '애플이 가면 곧 길이자 진리'라며 고객을 무시한 결과다. 깨끗한 디젤을 자랑하면서 뒤에서는 배기가스 데이터를 조작한 폭스바겐의 전철을 밟은 것이다.

애플이 앞으로 어떤 운명에 처할지는 알 수 없다. 1977년 롭 자노프가 디자인한 애플 컴퓨터의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로고가 '썩은 사과'(Apple Corrupted)로 전락해 두고두고 조롱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혁신이 사라진 기업은 지루하다. 그러나 고객과 공감하지 못하고, 고객을 배신한 기업에 돌아갈 몫은 단순히 이미지 추락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애플은 "배터리 3만4천원"을 외치고 있으니 참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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