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라고 하면 '보수의 도시'. 즉 정치의 도시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구의 땅속은 문학과 음악과 철학으로 꽉 차 있다. 필자는 이 코너를 통해 그중에서 음악으로 대구의 민낯을 보여 주고 싶다. 현대사에서 대구 서민들과 애환을 같이한 가요, 민속음악, 그리고 아이돌 음악 등과 관계있는 대구의 지명이나 사람 이름 그리고 에피소드를 평범한 말로 여러 이웃들과 나누고자 한다.
'소머리 국밥' '원조 소머리국밥' '진짜 원조 소머리국밥집'…. 국밥골목에 가면 흔히 보는 원조 타령 간판들이다. 음식이란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을 해야 더 맛이 있어지는 것인데 다만 오래된 식당이라고 맛까지 비례한다는 듯이 선전하는 것은 유치한 자부심이다. 최근에 정몽주 선생의 고향도 서로가 원조라고 하는 시비가 생겼다. 영천에서는 임고면이 포은의 고향이라고 하고 포항에서는 장기면이라며 영천이 짝퉁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영천은 포은 선생의 외가로서 그곳에서 출생하고 자랐다. 포항은 포은 선생의 선산과 일가가 살고 있는 선조의 고향이다. 정몽주 선생의 고향 시비는 서로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밥집들 원조 타령은 음식의 맛이 누가 더 나은가로 경쟁하지 않고 오래된 것만을 내세우고 게다가 변함없는 옛날 맛 그대로라고 자랑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다. 그런 간판 앞을 지나노라면 짜증이 난다.
원조 타령의 또 다른 이야기는 가요사에도 있다. 대구 만촌동 호텔인터불고(옛 파크호텔) 옆에는 고모로 넘어가는 신작로가 작은 언덕을 넘어 이어지는데 호텔 측에서는 그곳이 고모령이라고 한다. 고모령의 원조는 자기네들의 동네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인들도 만만치 않다. 제2군 작전사령부 안에는 형제봉이 있는데 그 형봉과 제봉 사이의 고갯길이 고모령이라고 한다. 서로가 상대를 짝퉁이라고 한다.
고모령은 유호 선생이 지어낸 가상의 문학적 장소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육군본부 정훈감실에서 유호 선생에게 노랫말 의뢰가 들어왔다. 전쟁터로 출정하는 아들과 어머니의 애절한 이별을 그린 노랫말을 지어 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는 대구 사람이 아니어서 대구 인근 시골에서 시내 동인파출소 뒤에 있던 신병훈련소로 떠나는 장정의 애틋한 사연을 그릴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구 지도를 펴놓고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아주 좋은 지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고모(顧母)였다. '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 차마 헤어질 수 없는 어머니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고모, 모자 이별의 지명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여기다 '비단 옷에 꽃 그림'이라고 고모에다 고개까지 덧붙여 '고모령'이라는 단어를 지어냈다.
동대구역이 없던 시절 대구역에서 서울 가는 기차를 기다리노라면 스피커에서 '기차가 정시에 고모역을 통과하였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한 10분쯤 있으면 기차가 역 구내에 들어오고 '대구, 대구' 하며 크게 외치는 스피커 소리가 들린다. 옛날 경부선으로 상경하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듣던 지명이 고모다. 정다운 고모. 그래서 고모령이야 있든 말든 고모령이라면 대구 사람들은 모두가 사랑하는 단어이다. 없던 고모령이 새로 생겼으니 좋은 일이다. 파크호텔에서 비 내리는 고모령 비석을 제막할 때 유호 선생이 와서 자기가 작명한 지명에 비석까지 생겨 정말 영광스럽다고 했다. 대구는 시나 노래 가사에 그 이름이 잘 나오지 않는다. 숨어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짝퉁 지명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 전 적십자병원 원장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