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친구가 언젠가 내 글을 보곤 애늙은이 같다고,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젊은이들과는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탓인지 '할아범스럽다'는 말까지 들었다. 신문을 즐겨보던 친한 대학 동기가 연락을 했다. 신문에 실리는 짤막한 나의 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며 "넌 여전히 할배 같다"고 놀렸다.
'할배'. 창창한 25세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별명이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자주 듣는 말이다. 물론 놀리는 기분으로 나이에 맞지 않은 어투와 행동을 한다고 지어준 말이겠지만 실제로도 나는 '할배'를 좋아한다. 친가에서는 장손으로, 외가에선 막내 손주로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받았던 나는 '할배'라는 단어 하나로 그들의 삶과 정체성, 지식과 지혜 모두를 기억한다. 산을 오르기에 앞서 단순히 오르는 것만이 아닌 나무와 숲, 그리고 계곡을 가르쳐 주셨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6'25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해주셨으며, 당신의 손자가 성숙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셨다.
이처럼 자연스레 그들의 사고가 녹아들어 조금은 세월의 고개를 넘은 척하면서 '할배'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건 아닐까.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를 통해 할아버지를 좀 더 정감 있게, 친한 어르신들께만 쓰던 '할배'라는 단어가 이제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게 됐다. 나는 그들의 경험과 시간의 풍파를 겪은 깊게 팬 얼굴 주름과 굳은살 박인 손을 좋아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스승이며, 일생 동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눈이 내리는 겨울과 같다. 혈기왕성한 시절을 보냈을 그들이 땅을 단단히 다지고, 무수히 많은 시간을 쓸어내린다. 마지막 빛을 내는 것처럼. 그들의 빛이 꺼지기 전에 다른 누군가가 빛을 이어가야 하지 않나.
어쩌면 '할배'는 '삶'의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동네 노인이든, 꼰대든, 지팡이를 짚은 신사든 모두가 한때는 패기 넘치는 젊은이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으며, 삶의 목표를 향해 부단히 매진하였을 '우리'다.
매서운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창밖에 있는 지난여름, 푸르고 풍성한 나뭇잎으로 싸여 있던 가지를 바라본다. 그 앙상한 나뭇가지에 다시 새순이 자라나길 기다리며 새해, 삶의 또 한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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