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다물(多勿) 한배(同舟)

'우리는 인민에 진정 충실한 공복이 되어야 한다…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내 시신은 화장해 달라…재는 언덕에 뿌려 달라…재가 뿌려진 곳 위에는…집을 세워 방문객들을 쉬어가게 하는 것이 좋겠다. 언덕에 짙푸른 나무 숲을 꾸미도록 하라…세월이 지나면 나무들은 숲을 이룰 것이고 그러면 경치가 더 좋아지고 농업에도 이로울 것이다…우리 인민 모두에게…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끝없는 애정을 보낸다….'

베트남의 독립운동과 통일에 평생을 바친, '호 아저씨'로 통하는 지도자 호찌민은 통일(1976년)을 보지 못하고 1969년 9월 2일 숨졌다. 1945년 외세 침략과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24주년 기념일 때다. 그는 죽기 4년 전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 자유, 행복, 75회 생일에 부쳐'라는 제목의 유언을 남겼다. 비록 그의 몸은 재가 되지도, 산하에 뿌려지지도 않았지만 뒷 지도자들은 '인민의 충실한 공복'으로서 마침내 남북통일을 일궈냈다.

지난해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7' 행사 때의 한국인 사업 관계자와 현지 한국인 증언은 잊을 수 없다. "베트남은 지금 경제가 처지고 부패가 심하지만 미국, 중국, 일본 등 누구에게도 쫄지 않는, 자존심 센 나라다. 호찌민의 지도력이 낳은 통일 베트남의 힘이다. 베트남에서 호찌민을 빼고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야말로 '국부'(國父)이다."

물론 그의 다른 모습도 있다. 토지개혁 과정에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이다. 특히 자신의 고향 응에 안 성(省)의 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토지개혁 폭동으로 사망자만도 수만~10만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최소 5천~5만 명의 관리가 처형됐다는 연구도 있다. 그의 부정적 행적이다. 그럼에도 친근한 '호 아저씨', '호 할아버지'로 불리며 국부 대접인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독립과 통일 조국의 앞날을 위한 사심없는 지도력과 나라 사랑일 것이다. 그는 75~169개 이름 중 끝엔 '응우옌 탓 호찌민'(阮必勝)에서 '꼭 이긴다'는 호찌민을 썼다. 사회주의에 기댔지만 독립과 통합을 위해 민족주의도 수용했다. 그의 첫 번째는 독립과 통합, 사상 이념은 다음이었다. 옛 소련과 중국, 식민과 침략 지배자인 프랑스와 일본, 미국 사이의 등거리 외교와 실리적 거래도 그래서였다. 삶조차 청빈했으니 뒷사람의 거울이었다. 결과는 통일 베트남, 오늘날 베트남 힘의 원천이다.

우리도 백범 김구 등 훌륭한 지도자가 넘쳤다. 오직 독립을 위해 일제 식민 지배세력과 목숨을 건 항쟁을 한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는 숱했다. 저마다 베트남처럼 민족주의, 사회주의로 나눠 제 역할을 다했다. 다만 외세에다 호찌민을 괴롭히던 '일본 적군에게 아첨하며 해롱거리는 소수의 주구(走狗)' 같은 무리 탓에 우리는 두 진영을 통합할 지도자를 너무 일찍 잃었다. 좌우 통합은 좌절되고 강산은 허리가 잘렸다.

호찌민 같은 걸출한 뭇 지도자를 가졌음에도 우리의 남북은 되레 멀어지고 있다. 왜. 정치 지도자가 고만고만해서다. 저마다 잘난 질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북핵은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우리 강산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국제 정세는 숨이 막힌다. 여러 나라 세력의 무리 틈에서 살길을 어디에 찾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그런데 여야는 서로 딴 배다. 동주(同舟)는 없다. 더욱 답답한 노릇은 최근의 여야 정치다. 너나없이 극복에 나서야 할 충북 제천과 경남 밀양 화재와 같은 재난조차 정쟁(政爭) 삼아 힘과 시간을 헛쓰니 그저 놀랄 뿐이다.

지금 여야에게 주문하고 싶다. 삼국사기의 고구려 관련 한 기사를 읽는 일이다. '사대주의자'로 공격받는 김부식조차 우리 옛 땅을 잊지 말라며 '고구려 말로 고토(古土) 회복을 뜻하는 다물(多勿)'이란 말을 굳이 기록에 남긴 부분이다. 싸울 미력이라도 남았으면 옛 강토와 통일을 그리며 앞선 지도자처럼은 될 수 없을지언정 나라의 앞날을 위해 여야, 보수 진보 넘어 '다물 동주'로 통합에 나설 것을 바란다면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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