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의 대표작 '타워링'(1974년)의 무대는 135층짜리 세계 최대의 고층 빌딩 '글라스 타워'다. 마천루에서의 화재 발생을 상정하고, 피할 길이 없어진 사람들의 처참한 운명을 보여주는 줄거리다. 촬영 당시 감독은 실감나는 영상을 위해 세트장에 갑자기 불을 질러 엑스트라들이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는 장면을 그대로 담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재난 영화를 양산하는 할리우드에서도 불을 소재로 한 영화는 잘 찍지 않는다. 생생한 화면을 위해서는 실제로 불을 사용해야 하지만, 화염과 연기를 제어하기 힘들어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타워링' 이후 1991년에 나온 '분노의 역류'뿐이다.
한국 영화 '타워'(2012년)는 개봉 전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라며 기대를 모았다. 비평과 흥행에서 참패하고 '타워링'보다 결코 재미있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작, 출연진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엄청 고생했다. 배우들은 유독가스에 노출돼 고통받고, 위험한 상황에 수차례 노출됐다. 불은 아무리 조심하고 대비해도 제어와 조절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가장 황당한 불은 사막에서의 천연가스 화재다. 몇 년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냥 놔두는 방법밖에 없다. 지난해 3월 포항에서 발생한 천연가스 화재가 10개월 넘도록 꺼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1966년 구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80㎞ 떨어진 우르타-불락에서 가스가 분출하면서 화재가 몇 년간 계속됐다. 소련 당국은 화재 진압에 갖은 수를 썼으나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깊이 5㎞의 시추공을 파고, 6KT(킬로톤)의 핵폭탄을 설치해 터트렸다. 폭발한 지 1분 후 순간적인 진공 상태에서 불이 꺼졌으니 대성공이었다. 소련 당국은 1969년 석유 화재, 1970년 가스저장소 화재 때 같은 방법을 사용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우르타-불락의 성공은 천운이 따랐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배화교(拜火敎) 혹은 명교(明敎)로 불리는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는 페르시아다. 끝없는 사막에서 천연가스 화재가 일어나면 신비하고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불을 신성시하는 배화교 탄생의 비밀을 엿보는 듯하다. 불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서 훔쳐 인간에게 건네줄 때부터 위험 물질이었다. 제어가 불가능한 신(神)의 전유물을 인간이 사용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에서 보듯, 불은 인간의 오만함과 나태함을 질타하는 '신의 채찍'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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