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사랑의 나눔, 적십자회비

우리 곁에 있지만 그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사람들.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267만 명의 위기 상태 사람들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다. 우리가 찾지 않는다면 이들은 계속 숨어 있어야 한다.

빈곤 아동 91만 명, 아픈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돌보며 곰팡이 핀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걱정해야 하는 어린아이들, 너무나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살고 있다.

홀몸노인 74만 명, 삶의 마지막이 너무 힘겨운 노인들, 한 달이 지나도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는 할머니와 홀로 배를 채우며 배고픔을 참는 할아버지, 자식도 배우자도 없이 텅 빈 방에서 삶의 마지막을 버티고 있다.

의료소외환자 102만 명, 병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자들, 병원에 갈 수 없어 집에만 누워 있는 중환자, 치료 시기를 놓치고 평생을 불구로 사는 장애 어린이, 의료에서의 소외가 삶에서의 소외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들을 마치 다른 세상 사람들인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행복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적십자 회장으로 있으면서 지난겨울 서문시장 화재 때가 유난히 기억이 난다. 찬바람이 매섭기만 한 겨울에 생활의 터전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려 애타는 마음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상인들, 그들을 위해 우리 적십자 봉사원 천사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식사와 지원물품을 들고 찾았었다. 한 상인이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젊은 자원봉사자 대학생들과 각 사회단체에서 찾아주신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함께한 나눔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순 없었지만 마음 한쪽의 작은 촛불과 같은 희망의 빛을 나눌 수 있었음을 나는 확신한다.

최근 역대 국내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이라는 영화가 있다. 웹툰을 스크린으로 옮겨 인간은 사후 이승에서의 행보를 저승에서 심판받아 각기 다른 지옥으로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웹툰에서 한 할머니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웃에 나누며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 할머니는 저승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모셔지고 모든 이의 부러움과 존경 속에 저승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저승의 망자들이 베푸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평생을 베풀며 생을 마감한 가난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지 고민해 보게 한다.

그러나 요즘 극히 일부의 후원금 사기 사건 등의 보도로 인해 기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안타깝기만 하다.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선한 국민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악인들에 대한 뉴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만들어 기부 포비아 현상을 낳았다. 그래서 우리 적십자와 같은 더욱더 안전한 곳을 통하여 많은 사랑의 물결이 흘러가길 소망한다. 안전한 여러 기관 중 적십자는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금을 가장 투명하게 사용하며 또한 외부 감사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한다. 적십자는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외부 회계법인 감사를 받는 유일한 구호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과 정성을 모아 관심 밖의 사람들을 돕는다. 적십자는 113년 전부터 대한민국의 관심 밖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절실한 도움을 전하며 세상에 선을 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물품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녀가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길 꿈꾼다. 더 나아가, 아픈 이들의 가족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세상도 꿈꾼다. 적십자회비 납부와 같은 작은 관심과 참여가 이 꿈을 이루고 우리 세상을 조금씩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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