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김여정 방남에 혹하지 말고 '평창 이후' 대비해야

북한 김정은의 친동생인 김여정이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일원으로 오늘 열리는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다. 김여정은 김정은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인물이다. 그런 김여정을 김정은이 보낸 데는 야심 찬 정치적 복선(伏線)이 깔렸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십중팔구 평창올림픽을 이용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로 전환한다는 구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호응이 꼭 필요하다. 이는 성공적이다. 북한이 요구하지 않아도 문 정부가 알아서 북한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정치쇼'일 수밖에 없는 각종 부대행사 개최의 걸림돌이 되는 국내외의 각종 제재에 '예외'라는 구멍을 뚫어 무력화시켰다. 평양 열병식에 대해서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올림픽 이후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에 대해서도 말을 흐린다. 이낙연 총리는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는 얘기"라고 했다.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 전술에 문 정부가 자발적으로 말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제의 이후 지금까지 남북 당국 간 접촉에서 '북핵'이란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문 정부는 '핵'에 대해 입을 닫은 것이다. 그럼에도 여권의 분위기는 평창올림픽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듯이 잔뜩 부풀어 있다. 김여정의 방남에 이르러서는 더 심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김여정 면담이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소리까지 나온다.

그러나 올림픽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란 현실적인 근거는 없다. 정상화의 대전제는 핵 폐기이고 그것도 '조건 없는'이란 전제가 붙어야 한다. 핵 동결 제스처와 보상이 짝을 이뤄 반복해온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어떤 신호도 보내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권은 정상회담이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는 접고 올림픽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정은은 친동생까지 보냈으니 남한은 보답하라며 대북 제재 완화와 한미 군사훈련 무기 중단 등 값비싼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다. 지금은 값싼 민족 감정에 사로잡혀 현실을 낭만적으로 바라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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