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합리적 분권 논의를 해보자

새 정부 들어서 지방분권을 둘러싼 개헌 이슈가 활성화되고 있다. 분권은 실질적 자치 구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잘 다루어야 할 정치 이슈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분권개헌을 포함한 광폭 수준 분권을 주장하기 전에 작금의 분권 노력과 한계를 이성적으로 숙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분권의 수요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자. '누가 분권에 목말라 하는가'라는 질문에 주민들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연구에 따르면 주민들은 지방정치 및 자치에 냉소적이며, 분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적다. 관심이 많은 집단은 주로 정치인, 공무원, 분권운동가 등이다. 분권의 핵심 주체이자 대상인 주민은 관심이 별로 없는데, 정치행정가들이 앞장서서 주도하는 형국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분권이 '선거'정치 이슈' '관공서 간 권력 나누기' '분권 이득의 쏠림 현상'으로 보이면 분권은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분권개헌을 해서 헌법에 분권 대못을 박고, 연방제 수준으로 국가를 분할하고, 의회에 중의원, 참의원제도를 만들자는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분권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통치 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꾼다 해도 이에 따른 이득과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다. 제도 변경 주창자들은 마땅히 그 이득과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누가, 어떻게, 왜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합리적 답변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현재의 분권 논의는 우리 상황과는 거리가 먼 스위스와 독일 사례의 장점만 미화하고 모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셋째, 20여 년 시행된 자치 및 분권 성과에 대한 주민 의견을 조사해 보고, 분권개헌 논의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치권과 분권운동가들은 아마도 큰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슈인 개헌 사안을 정치권과 분권운동가의 주도에 의해서 해결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진정으로 분권개헌이 중차대한 시대적 사안이라면 개헌의 실체를 밝히고 그에 대한 국민 동의를 구해야 한다. 분권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는 것도 중요한 방책이 될 수 있다.

넷째, 지방분권의 이행 주체는 지방정부이며, 지방정부의 구성원은 단체장, 공무원, 지방의원이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자치와 분권을 구현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적, 제도적,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자치는 정당 예속, 제왕적 단체장, 밀실 행정, 관료주의, 감시 부실, 정부 혁신 의지 및 역량 부족으로 인해 '그들만의 자치와 분권'으로 변질되어 무관심과 냉소에 직면하고 있다. 건전한 자치와 효과적 분권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방정부의 혁신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지방정부를 혁신하도록 하는 효과적인 조치를 수반하지 못하는 '분권 만능 논리'는 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자치제도는 일본을 모방하여 20여 년간 실행해 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일본 자치분권의 시행착오를 반영한 자치분권 개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스위스나 독일이 연방제국가이긴 하지만 연방제도가 선진국을 만든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반면, 일본 자치제도를 모방한 우리가 일본식 제도 때문에 지방자치가 잘 안 된다는 식으로 매도할 이유도 없다. 일본식 분할자치제도를 갑자기 연방제로 바꿀 경우, 제도 실험 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기초학력이 어떤지를 정확히 조사하지 않고, 학교만 자꾸 바꾼다고 해서 성적이 올라갈 수 있겠는가. 제도를 탓하기 전에 우리의 방식이 왜 제대로 안 되는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숙의가 선행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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