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남북관계 '예정된 함정'을 피하라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시화법률특허사무소 미국변호사. 원전특허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경희대 법학과 졸업. 노동일 경희대 교수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시화법률특허사무소 미국변호사. 원전특허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경희대 법학과 졸업. 노동일 경희대 교수

올림픽 계기로 남북대화 분위기

대북제재·압박 국면 전환은 안 돼

섣부른 제재 완화는 북한만 이득

과거 실패 부른 함정 빠지지 말길

최근 화제를 모은 '예정된 전쟁'(그레이엄 엘리슨 저)을 읽었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설명한 책이다. 국제질서에서 지배세력과 신흥세력의 충돌은 결국 전쟁의 함정으로 빠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신흥국 중국과 지배국 미국이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는 와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 나라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책에는 북한의 도발이나 붕괴 등이 한반도에서의 미중 간 충돌을 야기하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미중 전쟁이 말 그대로 '예정된 전쟁'이라면 대한민국은 어찌 될까. 결론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전쟁은 필연적이지 않다. 전쟁은 피할 수 있다. 역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사례도 많지만 파국을 회피한 경우도 있다. 열두 번은 전쟁으로 귀결되었지만, 네 번은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 저자는 이런 논증 끝에 미중 전쟁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열두 가지 열쇠를 제시한다.

저자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나의 독후감은 다르다.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쇳말은 행위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중 전쟁만이 아니다. 갈등이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경우에 해당된다. 책에도 있지만 한 가지 예를 보자. 1936년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어기고 라인 지방을 재무장하여 유럽을 위협했다. 1차 대전 후 포기한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영국과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조약을 지키라고 압박했다면 어땠을까. 독일 군대는 물러나고 독일 장군들이 히틀러를 실각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히틀러의 무분별한 행동을 반대한 장군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영국의 처칠이 주장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랬으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불행히도 현실은 달랐다.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압박 대신 히틀러를 달래는 '평화론'을 선택했다. 결국 전쟁의 함정으로 이끈 선택이 되었다.

우리가 또 한 번 기로에 섰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평창올림픽의 평화 무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은 누구나 예상한다. 김여정, 김영철의 방문과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특사 파견을 결정하고 미국에 통보까지 했다. 접촉은 계속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가 보장되리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비핵화 기대는 바닷물이 마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북한의 말이다. 비핵화 약속 없이는 대화도 없다. 미국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우리의 선택지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우리 입장에서 중재 노력은 필요하다.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특사, 정상회담 모두 좋다. 문제는 올바른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북 제재와 압박 국면을 전환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북한이 갑작스레 대화에 나선 배경을 보면 자명하다. 우선은 유례없이 강력한 대북 제재가 효과를 발휘한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 조치를 수시로 격렬히 비난하는 북한이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군사 옵션 사용 가능성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이 현실화되기는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은 '전략적 인내'를 되뇌던 과거 대통령들과 다르다. 혹시나 하는 위협감을 북한이 느낄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변화가 김정은의 호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북미 대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도 그 연장선상에서 찾아야 한다.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고, 우리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던 북한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가장 손쉬운 우리를 상대로 제재에 틈을 벌리려는 것이다. 대화에 응하되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고수하는 한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특사는 이 점에 집중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일관된 자세가 중요하다. 과거처럼 일시적 유화국면으로 북한이 궁지를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머지않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섣부른 제재 완화와 국제 공조 이탈은 함정으로 빠지는 길이 될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예정된 함정'을 피하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란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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