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십천
김동원(1962~ )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구름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시집 『구멍』 (그루,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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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고향은 복사꽃이 피고 오십천이 흐르는 영덕읍에서 조금 떨어진 구계항이라는 작은 어촌이다. 홀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구경을 간 어린 시절의 화자는 백로, 버들, 은어, 꽃개울, 복사꽃이 어우러진 그 황홀경에 빠져 버렸다. 도원향(桃園鄕)이랄까, 인간 세상이 아닌 별천지를 난생처음 보았기 때문이리라. 한동안 복사꽃 붉은 향기에 취해 넋을 놓고 있을 때, 청상(靑孀)의 어머니는 복사꽃 그늘에서 흐느끼고 계셨다. 복사꽃잎 한 장 한 장에 비쳐 오는, 애비 없는 자식의 캄캄한 앞날이 걱정되어 조그만 손을 그러쥔 채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을 서로서로 느꼈으리라.
어느덧 어른이 된 화자는 그 옛날의 어머니가 불현듯 그리워지는 어느 봄날에,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어 아내와 애들이랑 오십천 천변의 복사꽃밭을 다시 찾았다. 꽃답던 어머니는 쪽빛 하늘에 피어나는 '흰구름덩이'로 몸 바뀌어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당신의 손주들과 며느리를 꿈인 듯 생시인 듯 흐뭇이 내려다보시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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