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소년 육상에서 20년 만에 새로운 기록이 나왔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 그중에서도 80m 기록을 깬 건 사실 별일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깼느냐를 말하자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장효민이라는 11세 소녀다. 효민이가 사는 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은커녕 눈이 쌓여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인 봉화군 소천면 두음리다. 운동회에 전교생이 다 모여도 44명인 봉화 소천초교 소속이지만, 실제로 등교하는 곳은 총 14명의 학생이 다니는 소천초교 두음분교다. 운동장이라야 한 바퀴를 크게 돌아도 70m가 겨우 되는 산골 분교다. 거기서 얼음땡놀이, 사다리놀이,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다니던 아이가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11초 62'. 20년간 굳건하던 12초의 벽이 무너졌다. 올 3월 영천에서 열린 경북소년체육대회 초등 4학년 여자 80m 경기였다. 효민이가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2등 선수는 다섯 걸음 이상 뒤처져 있었다.
달리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바람이 머릿결을 스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땀 흘린 뒤 상쾌한 기분이나 심장이 뛸 때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좋은 거냐고 되물었다. 1등을 해서 좋은 거냐고 재차 되물었다.
"1등 하고 났을 때 기분은, 2학년 때 구구단을 잘 외워서 선생님과 부모님한테 칭찬받았을 때 기분이랑 비슷해요."
달리기 재능을 알아챈 건 7살 때일 거라고 했다. 또래들과 술래잡기를 하면 아무도 효민이를 잡지 못했다. 심지어 1학년들도.
선수로 선발된 건 지난해 8월이었다. 3년 터울의 언니는 800m 달리기 봉화군 대표였다. 응원차 언니를 따라나선 봉화공설운동장에서 '술래잡기에서 잡히지 않는 실력'을 선보인 뒤였다. 효민이는 2개월 뒤 있은 경북학생체전에서 1위에 올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년 전 경북 초등 여자 100m 신기록을 세웠던 장영미 코치는 효민이를 처음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20년 만에 자신의 기록을 깰 것 같은 아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스타팅 블록 활용하는 방법도 몰랐죠. 그냥 달리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하나씩 가르치니까 왜 그런지 끊임없이 물어요. 생각하면서 운동을 한다는 거죠."
효민이는 달리기를 질문하는 운동으로 만들어 소화해낸다고 했다. '무릎 높이 올리며 뛰기' 등 보조보강운동의 원리를 따지고 효과를 캐묻는다. 그러고선 실전에서 활용해 차이점을 느낀다는 것이다. 장 코치도 이 점을 기특하게 여긴다고 했다. 성적을 위해 고된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즐기도록 돕는다고 했다. 당장 성적을 내려고 아이를 무리하게 훈련시키면 질려버린다는 것이었다.
효민이의 장래 희망을 물었다. "1학년 때 꿈은 요리사였는데 지금은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잖아요."
우사인 볼트를 좋아하고, 육상 금메달리스트들을 동경할 것이란 뻔한 예상은 빗나갔다. 달리기를 즐기는 11살 소녀의 미래는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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