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잎 날린다. 녹지 않는 꽃눈은 한 땀, 한 땀 검은 포도(鋪道)에 수를 놓는다. 한 남자가 어린 아이를 나무 아래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아이의 포즈가 다채롭다. 하늘하늘 날리는 꽃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뿌옇다. 미세먼지 탓만은 아니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방학 때마다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강으로 가셨다. 아버지는 고기를 잡고 나는 다슬기를 잡았다. 바람이 분다. 그때마다 꽃잎이 앉을 자릴 찾는다.
아이를 안는 남자처럼 맨 처음 나를 안았을 생부(生父)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개울물에 신발을 뺏기고 울고 있는 계집애의 모습이 스치곤 한다. 갈대보다 내가 더 흔들린다. '일 배, 일 배는 참 잘 드는 가위', '지평선 위에 덩그러니 걸린 낮달에서도/ 째깍째깍 자라는 갈대,// 갈 때맞추어 갈 데, 어디일까?'-「갈대」. 첫 시부터 나를 흔들기 시작한 『저 환한 어둠』은 경북 영천이 태실인 서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오래된 서재 냄새와 오늘의 디지털 바람이 섞여 누구나 상처의 칩 몇 개쯤 가슴에 꽂고 산다는 걸 일깨운다.
오래 먹먹하다. 가벼운 시집이지만 가슴 저 밑바닥부터 묵직해진다. 시인의 심중에 우뚝한 아버지, 어머니를 본다. 오래전 나를 두고 서로 내 색시라고 우기던 아들과 남편의 실랑이가 떠오른다. 딸은 또 아빠랑 결혼한다고 했던가. 이 세상 거의 모든 아이들의 첫 연인은 부모일 것이다. 가족이므로 싫거나 미워도 닮을 수밖에 없다. 「저 환한 어둠 –축, 회심상금」-84쪽에 시인의 부친 친필 메모 사진이 나온다. 어쩌면 시인의 시 절반은 그녀의 아버지가 쓴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살얼음 낀 개울가/ 일곱 살짜리 아이가 아픈 엄마 대신해/ 동생의 똥 기저귀를/ 바락바락 문질러 헹'구는 아픈 풍경도 '오늘은 어제가 눈 똥'하고 명랑한 소리를 낸다. '팔공산 갓바위에 오른 촛불들'은 '뭉근한 눈빛'을 보낸다. 불전에 절을 하며 '똥자루 같은 몸 한 자루 접어요' 한다. 섬세한 관찰력으로 물아일치에 이르는 강하면서도 넉넉하고 따뜻한 시인의 심성을 만난다. 어둠을 타박하지 않고, 가만가만 쓰다듬고 안아준다. 시인은 자신의 상처를 아버지의 팔팔한 '끗발'과 '저 환한 어둠'으로 꽃피웠다.
'아주 먼 옛날 날 안고 잔 남자다/ …/ -생각해 보이 니 공부 덜 시킨 거 순전히 내 미쑤다, 미쑤!/ … / 내 오랜 서러움이 요즘 하염없이 안고 자는 이 남자, 서현수'-「저 환한 어둠-서현수 씨」.
누구라도 어렵지 않고, 친근하게 안을 수 있는 책이다. 아픔 없는 인생도 있으랴! 능숙하고 능청스러운 위트, 해맑은 동심으로 착 달라붙는 위무의 손길이 있다. 「밤이 꾸욱 눌러 짜낸 아침처럼」 「시끄러운 고사리」 「재채기하는 바다」 등 파닥이는 제목들과 짧지만 긴 서사의 '저 환한 어둠'들이 어깨동무를 한다. 독자의 마음을 낚는 힘이 막강하다. 부모는 어둠마저도 환하게 하는 딸의 첫 연인이 분명하다. 벚나무 시커먼 몸뚱이가 켜든 환한 꽃불, 나풀나풀 꽃잎 하나 머리에 앉는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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