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가까워 친숙함 이상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듬뿍 담은 규슈의 마지막 여행지 규슈의 서쪽 나가사키(長崎), 운젠(雲仙), 구마모토(熊本)를 간다.
나가사키! 150년 전 유럽 문물 도입의 최초 창구가 되었던 도시. 그 덕택에 동서양의 두 얼굴이 조화롭게 숨 쉬는 도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넉넉히 담고 있는 그 오밀조밀함 속으로의 여행은 언제든 강추(강력추천)! 그러나, 만약 자전거로 여행 간다면 쌍수를 들고 비추(비추천)!
때론 어느 곳은 안 가는 게 좋다고 비추하는 것도 자전거 여행 전문가의 몫이기도 하다. 나가사키로의 자전거 여행은 가는 길도 힘들거니와 빠져나오는 길도 녹록지 않다. 큰 산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나가사키 시가지는 부산과 통영을 합쳐 놓은 듯 죄다 산비탈 위에 촘촘하게 집들과 볼거리들이 흩어져 있어 오르락내리락 자전거를 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가사키는 인구 40만 명의 중소도시지만 가장 역동적인 항구도시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인들이 맨 처음 이 땅을 밟아 교역의 문을 연 신식 도시였다. 종교박해가 자행되어 순직자를 여럿 배출한 성지순례의 도시이기도 하다. 곳곳에 그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예전 중국인들과의 뿌리도 깊어 공자묘가 모셔져 있고 차이나타운이 가장 번성한 도시이다. 오무라만과 연결된 무역항구는 늘 분주하다. 일본 근대화에 앞장선 사카모토 료마 등 선각자들의 흔적들도 진하게 남아있다. 단언컨대, 규슈 여러 도시 중 가장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돌아서면 뻥뻥 터지는 사고뭉치 자전거 여행
이번 자전거 여행은 내내 사고의 종합 뭉치였다. 발단은 첫날 공항 도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후쿠오카공항 도착 후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자전거 조립을 시작하려 한다. 아뿔싸! 핸들바를 조이고, 안장과 페달을 조아줄 육각렌치 묶음이 안 보인다. 불현듯 아파트 베란다에 고이 모셔 두고 온 기억이 선명하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사정을 설명해도 자전거 렌치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조립이 불가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맥이 탁 빠졌다. 고심 끝에 택시를 타고 하카타역(博多駅) 인근의 다이소를 찾기로 하였다. 수소문하여 다행히 육각렌치를 사서 자전거 조립을 겨우 마쳤다. 문 닫을 시간 5분 전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둘째 날, 사가(佐賀)에서 사세보를 거쳐 나가사키로 가던 중 맥도날드에서 잠시 쉰다. 온종일 구글맵을 켜둔 탓에 쉽사리 방전되는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에 꽂아 두었다. 또다시 부리나케 달렸다. 뭔가 허전하다. 휴대폰이 없다. 지갑이 든 자그마한 가방도 없다. 맥도날드에 두고 온 것이다. 하늘이 노랗다. 2㎞ 정도 되돌아가는 내내 온갖 생각들이 뱅뱅 돈다. 아! 그런데 내가 조금 전 머물던 그 장소에 그대로 있다.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일본이었다.
나가사키에서 운젠지옥(雲仙地獄)으로 가는 셋째 날이었다. 조심스레 달리는데 난데없이 불과 3m 앞에 초등학생이 쑥 나타났다. 순간, 깜짝 놀라 평소와는 달리 왼쪽 브레이크를 꽉 잡아버렸다. 말 그대로 자전거는 180도 빙글 회전하여 바닥에 꽂혔다. 다행히 애는 다치지 않았다. 나도 멀쩡한 듯하여 내리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자전거 기어가 안 걸린다. 물어물어 1㎞나 끌고 자전거숍에 갔더니 10단 기어 중 4개가 쓸 수 없단다. 바닥에 부딪히면서 기어(스프라킷)의 일부가 망가진 것이다. 부속이 없으니 고칠 수도 없단다. 오늘 가야 할 곳은 19㎞나 오르막이 있는 1,360m 운젠산 중턱에 위치한 운젠지옥이다. 결정을 해야 한다.
사용 가능한 기어로만 오를 것인가. 포기하고 공항으로 갈 것인가. 멍하니 앉았다. 돌아갈 수는 없으니 안 되면 끌고 걸어가기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운젠지옥으로 가는 길, 말 그대로 지옥을 톡톡히 경험했다.
사고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운젠지옥에서 항구도시 시마바라로 가는 길은 내리막만 25㎞ 나 되는 삼나무가 울창한 숲속이다. 인기척도 없는 곳이다. 물을 마시려고 잠시 쉬는데 목이 따끔하다. 손을 대보니 엄지손가락만 한 벌레가 목두건 속에서 튀어나온다. 목 주위가 금세 벌겋게 퉁퉁 붓기 시작한다. 찌릿 아프기도 하다. 순간 생각이 멈춰진다. 엎드려 지나가는 차라도 세워야 하는지, 큰일 당하는 건 아닌지, 온통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페달은 점점 빨라졌다. 내리막길의 속도가 40㎞를 넘나든다. 다행히 더 이상의 악화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산 아래 가게에 들러 30도가 넘는 일본 술로 목을 샤워한다. 겨우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하다.
시간을 지체한 탓에 구마모토로 넘어가는 페리 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하여 배를 놓쳤다. 다음 배 시간까지 1시간이나 멍하니 대기하였다. 이래저래 망연자실이다.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진다. 비행기 타러 가는 마지막 날, 구글맵도 애먹인다. 공항을 향해서 달려왔는데 국내선 청사다. 분명히 국제선 표지를 보고 밟아왔는데 아니다. 국제선 청사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 남짓, 자전거로 달려도 15분 이상 걸린다. 사정하여 택시로 이동하였다. 불과 1시간 남기고 도착하였다. 맨 마지막 탑승 수속자다. 5분만 늦게 왔으면 탑승을 거부했단다. 머피의 법칙인가. 이번 자전거 여행은 온통 의외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래도 무사히 마침에 감사한다.
◆인내심이 필요한 쉽지 않은 나가사키 가는 길
후쿠오카에서 서쪽 항구도시 나가사키까지는 직선으로 약 140㎞다. 두 번에 나누어 간다.
먼저 약 70㎞ 떨어진 사가시(佐賀市)로 간다. 경유 도시로 딱히 볼 게 없다. 큰 산을 넘어야 해서 힘도 든다. 여기서 하루를 쉰 다음 날 오무라만(大村湾) 끝자락에 위치한 사세보시(佐世保市)로 간다. 사가시에서 약 60㎞ 정도 가야 한다. 사세보는 165만㎡(50만 평) 규모의 오란다(네덜란드)풍 테마공원인 '하우스텐보스'(Hausu Ten Bosu)가 유명하다. '하우스텐보스'는 도쿄의 디즈니랜드, 오사카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더불어 3대 테마파크로 한때 각광을 받았지만 겹친 불황 속에 인기도 많이 떨어졌다. 최근에 다양한 축제를 개최하며 조금씩 분위기 탈바꿈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나가사키 가는 길은 약 65㎞ 정도로 넓디넓은 오무라만을 끼고서 달린다. 어느 정도 달렸을까. 외딴 오두막집처럼 생긴 건물 주차장에 사람들이 즐비하다. '치와타역'(千綿駅)이란다. 흡사, 우리나라 폐(廢)역사 모양과 닮았다. 오래된 역사를 그대로 살려 내부를 예쁜 식당으로 꾸몄다. 메뉴도 딱 하나 일본식 덮밥이다. 가격도 1천엔. 삐거덕대는 오래된 역사 건물 밖으로 오무라만이 내려다보이는 차창, 이따금씩 지나치는 해상관광열차와 어우러져 묘한 경치를 만들어낸다. 운치 있는 커피 한잔이 아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골스럽게 생긴 역사에서 잔잔한 오무라만을 멍하게 응시하는 것도 큰 위안이었다. 마침 스르륵 정차하는 해상열차의 사진을 운 좋게 찍었다. 우리나라의 버려진 역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안으로 충분히 벤치마킹해볼 만한 곳이다.
또 출발이다. 여기서 나가사키 시내까지는 약 30㎞ 남짓이다. 1시간 30분이면 족한 거리이다. 아, 그런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업힐, 업힐. 그리고 터널들! 정말 힘들다. 왜 나가사키로 자전거 여행을 오면 안 되는지 딱 말해주었다. 3시간이나 넘게 걸려 나가사키 시내에 들어섰다. 뉘엿뉘엿 저녁이 다 되어간다. 늦게 도착한 탓에 억지 춘양으로 아름답다는 나가사키의 야경을 체험한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 나가사키의 내일을 기약한다.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toursk@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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