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왼손이 모르게

4월 27일 남북한 두 정상이 평화의집에서 만났다. 3천여 명의 내외신 기자가 프레스센터에 모여들었고, 쏟아내는 기사에 전 세계가 주목하였다. 두 정상이 오랜 친구처럼 굳게 악수하고 포옹하는 순간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IMF 유동성 위기, 월드컵 4강 신화 때의 충격만큼 크게 다가왔다.

만남은 일거수일투족에 의미가 부여되었고, 사소한 실수마저 미화되었다. 북한 기자가 덕담으로 "선생님은 기자질 몇 년 하셨습네까?"라며 친근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질'이라는 표현이 북한에서는 호의로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70년의 분단은 사회경제적인 격차와 함께 언어문화적인 동질성을 크게 벌려 놓았다. 서로 다른 체제를 표방하며 보내면서 깊어진 이질감은 서로에게 커다란 짐이었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었다.

보건 분야에서의 차이도 적지 않다. 결핵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남한이 143명이고 북한은 536명으로 남북 모두 높다. 625전쟁 때 결핵에 걸렸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보균자로 감염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결핵유병률이 최고에 이르던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계적으로 결핵을 관리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결핵유병률이 뚜렷이 하향 추세를 보여 '결핵 관리 모범생'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북한은 여러 가지 문제로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영아사망률은 남한은 1천 명당 3명이고, 북한은 19명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같은 상황을 모른 체하며 방관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측은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왼손이 모르게' 묵묵히 노력해왔다.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영유아 영양사업을 진행해왔고, 의료계도 북한 결핵 치료 프로그램에 국제단체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격차를 줄이는 활동을 펼쳤다.

통일은 바로 눈앞의 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산재한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돌발사고로 힘든 줄다리기를 할 수 있다. 당리당략에 따라 열매만 독점하려 들면 그간의 노력을 물거품이 되게 할 수 있다. 어쩌면 굳어진 관계를 푸는 데는 단절의 시간만큼이나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욕심 때문에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허상에 머물게 할 수 있다.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간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하면서 갈등의 소지가 없는 부분부터 풀어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보건의료 영역에서 통일 준비 활동을 하고 있는 연세대 의대 전우택 교수의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이루기 위해 통일을 하는 것이라면, 통일에서 보건의료 영역의 준비는 가장 핵심적 일이라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샴페인에 취해 들떠 있는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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