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사강의 LIKE A MOVIE]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달콤 쌉싸름하네…모진 사랑 한 모금

*해시태그: #와인고프게하는영화 #가족애 #여행

*명대사: "사랑은 와인과 같아. 시간이 필요해. 숙성이 돼야 하거든"

*줄거리: 집을 떠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속알못' 장남, '장'. 똑 부러지는 성격, 삼 남매 중 실질적인 리더, 아버지의 와이너리를 도맡아 운영 중인 '와인 능력자' 둘째, '줄리엣'. 어렸을 적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꽃길 인생이었지만, 결혼 후 처가 월드에 시달리고 있는 '평생 철부지' 막내, '제레미'. 10년 만에 재회한 삼 남매에게 남겨진 아버지의 유산, 부르고뉴 와이너리에서 험난하지만 즐거운 최상의 와인 만들기가 시작된다.

바쁜 일상에 지쳐 있어서일까. 여행 같고 휴식 같은 영화가 보고 싶다. '어벤져스'가 주말 상영관을 독점하고 있는 탓에 인적 드문 야심한 시각에서야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이미 햇빛 쏟아지는 부르고뉴로 이미 떠나와 있었다. 그리고 강렬하게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포도밭의 사계를 담은 엽서 같은 풍경, 수확을 기념하는 마을의 축제로 와인의 풍미가 끊임없이 시각적으로 자극했기 때문이다. 어려울 건 전혀 없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잠시 내려놓고 즐기면 된다.

원제는 'Back to Burgundy'. 가족, 와인 영화라는 소재에 이 영화 제목은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버건디란 자줏빛을 뜻하기도 하지만 부르고뉴 지방에서 나는 와인을 통칭하는 뜻으로도 통한다. 와인의 전통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은 가족 경영 중심으로 한 와이너리가 유명하다. 그러니 떨어져 살던 남매들이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다시 돌아가 모이게 되는 이 영화의 플롯은 원제에 충실한 편이다.

예상대로 스토리는 심플하다. 가족을 등지고 세상을 떠돌던 삼 남매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장남 장(피오 마르마이), 동생 줄리엣(아나 지라르도), 제레미(프랑수아 시빌)는 10년 만에 재회한다. 삼 남매는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인 포도밭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매각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삼 남매는 똘똘 뭉쳐 와이너리를 지켜내고 최고의 와인을 빚으며 따뜻한 가족애를 환기한다는 스토리다.

제각각 따로 살아왔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만난 재회는 그만큼 어색하고 감정도 그 세월만큼 쌓인 상태다. 거기다가 삼 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공동 상속이어서 세 사람 모두의 동의 없이는 처분할 수 없다는 사실과 거액의 상속세까지 내야한단다. 지분을 팔고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장과 어떻게든 와이너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줄리엣 등 삼 남매가 서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또 아버지가 부치지 못한 편지는 눈물샘도 자극한다. 와인의 얼룩은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 것. 극 중 부모가 되어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는 장면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잘 아는 가족애에 관한 스토리지만 이 영화는 디캔팅처럼 부모 자식 형제애를 시간에 따라 와인을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숙성되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패니쉬 아파트먼트' , '사랑을 부르는, 파리' '차이니즈 퍼즐'을 연출한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은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깊이 파고드는 데 장기가 있는 감독이다. 세드릭 감독은 이 지방 출신은 아니지만 7년간의 제작기간과 사계절을 모두 채운 1년이라는 긴 촬영으로 누구도 담지 못했던 부르고뉴 지방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1년 동안 매주 같은 시각과 장소에서 사진 한 장과 1분 영상을 찍는 방법으로 포도밭의 사계절을 담은 장면은 CG가 아닌 사계절 그대로를 담은 노력의 산물이다. 요컨대 이 영화는 자연 그대로를 담은 와인을 음미하는 것과도 같다. 노력과 땀으로 숙성해야 제 맛을 낸다는 철학을 오롯이 담은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유명 와인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와인 좀 아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잘난 척 꽤나 하며 볼 수 있을 것. 프랑스 부르고뉴는 최고급 와인 산지다. 와인이라면 잘 모르는 편이라도 이 지방의 와인인 '로마네콩티' 정도는 들어봤을 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포도밭은 뫼르소 마을이다. 뫼르소 와인은 맛과 향이 풍부한 데 비해 동급 타 와인들에 비해 가격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정말 맛있다'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뫼르소 와인이 어떤 맛일까 궁금케 하지만 뫼르소 와인을 모른들 전혀 문제없다. 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고급 와인 장인에게서 샤도네이를 건네받은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상큼하고 달콤하다가도 쌉쌀해지고 깊어지는 와인을 인생의 맛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와인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 같은 소재를 다뤘던 영화 '사이드웨이'는 "만일 오늘 내가 와인 한 병을 딴다면 오늘의 맛은 어제의 맛과 다르겠죠. 왜냐하면 와인은 살아있으니까요. 그리고 끊임없이 견고해지고 복잡해져요. 절정에 다다를 때까지"라고 와인을 삶에 비유했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기다림과 땀과 노동의 대가를 치른 와이너리의 삶은 훌륭한 인생일 것 같다. 투명하고 고혹적인 빛깔과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숙성의 인내를 견뎌야했을까.

영화를 봤으니 이제 와인 한 잔을 해볼까 한다. 내가 고른 이 와인은 평범한 여느 와인이 아닐 테니까. 지금 인생의 이 시기를 지나며 오늘 오픈한 와인과 함께 오늘의 맛과 풍미를 음미해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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