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7시 30분쯤 대구 동부경찰서 동촌지구대. 백발이 성성한 택시기사 이태원(71) 씨가 검은색 여행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지구대로 들어왔다.
당직근무 중이던 이재왕(57) 순찰3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씨가 들고 온 가방을 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방에 든 신발상자 속에 5만 원권 6천 장, 무려 3억 원에 달하는 현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랬다. 이씨는 이날 오후 6시쯤 동대구역에서 승객 A(32) 씨를 태워 수성구의 한 아파트 앞에 내려줬다. 두 사람 모두 택시 트렁크에 여행가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였다.
잠시 뒤에야 여행가방의 존재를 기억해낸 이씨는 주인을 찾아주려고 가방 문을 열었다가 거액의 현금다발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순간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곧 "짐을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곤란해하고 있을까" 생각이 미쳤다고 했다. 그래서 1초도 더 고민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지구대로 운전대를 돌렸다.
가방 안에는 연락처도, 주인을 알 수 있는 표식도 없었다. 이 팀장은 고민 끝에 경찰청 유실물종합관리시스템 'LOST112'에 접속했다. '이 정도의 거액이면 분명 잃어버린 사람도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LOST112의 분실신고 란에는 30분 전쯤 A씨가 자택 인근인 수성경찰서 고산지구대를 찾아 접수해둔 신고가 조회됐다. '택시 트렁크에 놓고 내린 듯하다'는 점과 '검은 가방 속에 현금이 들었다'는 신고내용이 이씨가 들고 온 가방과 일치했다.
즉시 택시기사 이씨와 승객 A씨를 지구대로 부른 경찰은 A씨의 신원과 가방 내용물에 대한 설명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현금이 범죄 연관성은 없는지 조사한 뒤 가방을 주인에게 돌려줬다.
자칫 거액을 잃어버릴 뻔한 A씨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서울에서 사업하는 아버지에게서 돈을 받아오던 길이었다"며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눈앞이 캄캄했는데,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택시기사님과 경찰에 정말 감사드린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경찰을 통해 "돈 욕심도 없고, 내 물건이 아니니 빨리 주인을 찾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연락처가 없어 답답했는데 경찰 도움으로 금방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불과 몇 달 전에도 승객이 두고 내린 현금을 찾아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며 "선한 마음씨 덕분에 자칫 큰 손해를 볼 뻔한 시민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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