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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 못 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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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하(1961~ )

장하빈 시인
장하빈 시인

뒤돌아보니
알게 모르게 잘못한 일이 참 많네요
잘못 잡은 손, 잘못 든 길, 잘못한 말……
캄캄한 극장에서 대충 적당한 자리에 앉았는데
누군가 제자리라며 찾아왔을 때처럼,
참 무거운 곤경,
찌르는 것들 때문에 늘 쑤시고 아팠네요
잘못 잡은, 잘못 든, 잘못한……
그 '못'자를 빼내 버리면
아! 그래, 잘한 일
못 뺀 자리가
웃는 당신의 볼우물 같아요
-시집 『저 환한 어둠』 (시와 표현, 2015)

잘못 잡은 손, 잘못 든 길, 잘못한 말, 잘못된 만남, 잘못된 사랑….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뜻하지 않게 빚어지는 이 비일비재한 '잘못' 속에 하나같이 단단한 '못'이 박혀 있었던가? 가슴에 박히거나 심장을 찌르는 이 '못'으로 인해 "참 무거운 곤경"에 빠지거나 "늘 쑤시고 아픔"에 처할 때가 종종 있었던가? 그렇다면 갖은 '잘못'으로 얼룩진 삶에서 '못'을 모조리 빼내 버리면? 잘 잡은 손, 잘 든 길, 잘한 말, 잘된 만남, 잘된 사랑…. 이렇게 모두 잘한 일로 인생 역전을 맞이할 터!

"못 뺀 자리가/ 웃는 당신의 볼우물 같아요" 이 빛나고 아름다운 경구는 기발한 상상의 말놀이와 재미를 넘어서, 번뜩이는 삶의 지혜와 재치를 담아낸다. 이처럼 시인은 '못'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 '아니할 못-쇠 못-저수지 못'의 넘나듦을 통해 언어유희를 펼치는 한편,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잘못'된 삶을 성찰하거나 반성하고자 한다. 이른바 '저 환한 어둠'의 그윽한 삶의 빛깔이다.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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