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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합창' 이후 섬뜩한 9번의 저주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연말이 되면, 의례 연주되는 것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다. 관현악 오케스트라 4악장에 대규모 합창이 더해지며, 풍성한 화음으로 공연장은 물론 듣는 이의 마음까지 가득 채우며 '환의의 송가'로 한 해의 끝을 장식하곤 한다.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베토벤은 이 교향곡에 '9번'이라는 번호만을 주었지만, 교향곡에 합창이 포함되었다는 것이 당대에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나중에 '합창'이라는 부제도 얻었다. 초연 당시 베토벤은 콘서트마스터였던 움라우프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지휘했다. 연주 후 객석이 깨질 듯한 박수를 받았다. 이미 청력을 잃어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던 베토벤은 알토 솔리스트가 관중의 환호를 알려준 후에야, 비로소 관객 쪽으로 돌아서 답례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지금까지도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런 걸작에 섬뜩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니, 이는 바로 교향곡 9번의 저주다. 자신보다 더 위대한 교향곡이 나올까 질투라도 했던 베토벤의 저주였을까.

베토벤이 교향곡 9번 '합창'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망한 이후로, 후대 작곡가들은 9번을 넘어서는 교향곡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이 9번 '그레이트', 브루크너의 교향곡 번호는 0번부터 시작하지만 미완성 교향곡 9번을 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드보르자크의 유명한 교향곡 '신세계' 역시 9번이 마지막 작품이다. 그리고 말러는 9번 교향곡의 저주를 스스로 두려워해,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고는 번호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이름을 붙여 죽음을 피해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10번째로 작곡한 곡에 9번의 타이틀을 남겼는데, 9번의 저주를 증명이라도 하듯 10번째 교향곡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 믿거나 말거나 한 저주를 토대로 실제로 행해진 한 조사에 따르면, 19세기 9곡 이상의 교향곡을 남긴 작곡가는 33명, 이중 9번째를 쓰고 사망한 사람은 18명이나 됐다. 딱 50%에 해당되는 사망률이다. 교향곡 작곡가로서 명성을 남긴 작곡가들은 모두 명단에 올라, 저주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의학기술이 저조했던 19세기, 몸을 사리지 않고 교향곡 작곡에 투혼하던 작곡가들이 9번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 무시무시한 저주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끝을 맺는다. 유명한 교향곡 작곡가로서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극복한 유일의 인물로 여겨지는 쇼스타코비치는 총 15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저주가 사라진 21세기는 이름하여 교향곡 다작의 시대. 2005년에 사망한 영국의 로완 테일러는 생전 265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산타클로스라는 별명을 가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레이프 세게르스탐은 무려 300개가 넘는 교향곡 넘버를 썼으며, 현재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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