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신비로운 마을
모레노빙하의 신비를 간직한 채 칼라파테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1시간30여분 만에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항구도시 우수아이아(Ushuaia)의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민박집으로 가는 길은 시내를 둘러싼 설산들이 이국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세상의 끝, 대륙의 끝, 육지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에 드디어 왔다. 땅끝이라곤 하지만 설산들에 둘러싸여 포근한 호수마을처럼 보인다. 바닷가 시내에는 상가들 사이로 고풍스런 성당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언덕을 올라가며 2∼3층의 예쁜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지구상에 사람이 사는 최남단 마을인 우수아이아는 남극여행의 전초기지이자 남극과 불과 1,0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신비로운 곳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며 경사진 언덕에 자리 잡은 이곳은 1년 내내 세상의 끝을 느끼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로 붐비고, 여유 있게 시내를 걸으며 땅끝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먼저 시내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세상 끝의 골목을 걸으며 지구의 최남단이라는 위치와는 달리 아름다운 시가지를 둘러싼 설산의 장엄한 풍경은 환상적이다. 한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춥지 않은 편으로 거리에서 마주친 여행자들과 어울려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기도 했다. 혼자서 갈매기와 바닷가를 거닐다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알마센 라모스 헤네랄레스 카페(El Almacen de Ramos Generales)를 찾아 달콤한 초코라테를 마시며 땅 끝의 묘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
우수아이아의 관광명소는 세상의 끝 박물관(Museo del Fin del Mundo)이다. 박물관에는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에 살고 있던 오너족, 테우엘족, 아라카르프족 등의 생활용품과 비글해협에 사는 바다사자와 파타고니아에 서식하고 있는 각종 새의 박재도 눈길을 끈다. 또 찰스다윈이 비글 해협을 항해할 때의 항해일지와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한편 박물관에는 세상의 끝까지 온 것을 인증 받듯 많은 여행객들이 '세상의 끝'이라는 스템프를 찍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가까이에 있는 감옥박물관(Museo del Presidio de Ushuaia)도 아이러니한 곳이다. 죄수들이 직접 지은 이 감옥은 1902년부터 건축되어 380개의 방에 600명이 넘는 죄수가 있었던 곳이었다. 세상 끝에까지 내몰려 자신이 직접 만든 감옥에 갇혔던 이들은 최고의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1948년 폐쇄되면서 감옥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태초 지구 모습 간직한 '티에라 델 푸에고'국립공원
우수아이아에서 12㎞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발 3,000m의 화강암 봉우리를 덮은 만년설과 빙하, 호수와 원시림이 어우러진 스페인어로 '불의 땅'이라는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국립공원은 세상의 끝에서 만나는 인상적인 풍경들로 태고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게는 우수아이아 땅 끝 기차(El Tren del Fin del Mundo)로 국립공원의 내부를 달리는 관광열차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여 우선 예약을 하고 달려갔다. 지구 최남단 기차를 타고 싶었다. 1904년 이곳을 개척하기 위해 죄수들을 동원해 철길을 놓고, 벌목한 나무들을 옮기던 기차가 지금은 관광열차로 운행되고 있다. 죄수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기차이지만 오래된 역사의 발자취를 남기고자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 1994년부터 운행하고 있다. 만년설과 빙하, 호수와 원시림 사이를 칙칙폭폭 증기를 뿜으며 기적을 울리는 기차는 야생동물과 식물이 어우러진 계곡과 삼림사이를 달린다. 차창에 비친 풍광은 태초의 지구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트레킹의 종착지 알라쿠시(Alakush) 방문자센터는 예쁜 목조건물에 식당과 휴게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잠시 눈보라를 피해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빨간 기관차가 녹색의 기차를 끌고 증기를 뿜어내며 공원의 원시림을 달리는 엽서에 세상의 끝 기차와 슬픈 철길의 이야기를 써서 나에게 보냈다. 다소 힘들고 지치기도 한 여행길에서 엽서를 쓰니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 땅 끝에서 보내는 엽서가 지구반대편 또 다른 나에게 닿을 수 있을까? 세상의 끝에 선 우체통에 엽서를 넣는다.

◆ 비글해협, 세상의 끝에서 만난 등대
우수아이아에서 가장 많이 하는 비글 해협 투어를 예약하고 다음날 아침 항구로 달려갔다. 비글 해협은 진화론을 주장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탐사선 '비글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른 아침의 맑은 햇살과 잔잔한 바다위의 은빛들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는 듯 일렁거린다.
비글 해협에 있는 섬들은 대부분 자연 생태 보호구역으로 되어있다. 비글 해협 투어는 배를 타고 바다사자, 팽귄, 가마우지 등을 관람하는 투어로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세상 끝 등대'를 볼 수 있다. 모든 슬픔을 내려놓고 행복만 가져간다는 해피투게더의 배경이자 우수이아의 상징인 빨간 등대를 마주할 수 있고, 만년설을 배경으로 비글 해협에서만 볼 수 있는 물개들과 펭귄들의 특별한 풍광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의 땅 끝에서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감탄사를 쏟으며 1시간쯤 달려 비글해협 대서양 초입에 외롭게 서있는 '세상 끝 등대'와 마주할 때면 숙연해진다. 세상의 끝 등대의 외로움과 꿋꿋함을 느끼며 전율이 가슴가득 밀려온다. 여기에서 더 달려 남극으로 가고 싶어진다. 남극크루즈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비용과 일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파타고니아와 모레노에서 청빙을 눈이 시리도록 보았지만 남극이 주는 의미가 커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 섰다.
지구 끝이라고 해도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세상의 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끝을 찾아온 여행자들은, 세상의 시작을 보고 떠난다. 그래서 세상의 끝은 이제 내게 있어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어딜 가도 무엇을 보아도 끝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는 우수아이아를 뒤로 하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아이레스로 떠난다.
안용모 자유여행가 · 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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