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15분 심층진료와 주치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31초', '22초', '44초', '29초', '29초', '36초', '평균 31초'. '아시안게임' 육상 단거리 경기의 결과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하얀 정글'을 제작한 송윤희 감독의 카메라 앵글에 잡힌 한 대형병원의 환자 한 명당 진료 시간이다.

'환자의 말을 들어라. 환자는 항상 진단을 말해주려 애쓰고 있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오슬러의 말이다. 그러나 많은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시간에 쫓긴 의사들은 환자의 말을 평균 '16초' 안에 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제 아무리 명의(名醫)라도 '3분' 안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환자와 치유의 교감(交感)을 나누지 못한 의사들은 각종 검사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올해 '15분 심층 진료' 시범 사업이 시작됐다. 병원 접수 시 '심층진료'를 신청하면 의료진이 필요성을 판단한다. 고질적인 '3분 진료'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OECD 내 11개국의 평균 진료 시간이 17.5분이고, 18분 이상 진료해야 환자의 이해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반영됐다. 최근 발표된 서울의 한 국립대 병원의 조사를 보면 '심층진료'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더 주목할 점은 '총진료비'가 오히려 줄어든 것인데, 자세한 병력 청취를 통해 불필요한 검사와 처방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분 진료'를 깨고 '심층진료'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질서하게 의료를 '과소비'하는 '의료 쇼핑'과 '대형병원 환자집중' 현상이 먼저 고쳐져야 한다. 환자의 위중함과 관계없이 동네병원과 대형병원이 무한경쟁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이제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3분 진료'에서 '심층 진료'로 가는 길목에 '주치의 제도'가 있다. 원하는 의사를 '주치의'로 등록하고 치료는 물론이고, 건강 상담, 만성 질환 관리 등의 포괄적인 서비스를 받는 '단골 의사' 제도다. 필요한 경우에만 '주치의'가 직접 상급병원으로 의뢰하므로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주치의'로부터 의뢰된 환자만 진료하는 대형병원에서도 '심층진료'가 가능해진다.

주치의의 '강력한 권고'로 휴식을 취한 문 대통령은 곧 건강을 회복했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8년 만에 금연에 성공했다. 이처럼 가까이에서 건강을 돌보고 책임지는 '주치의'는 대통령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단한 삶에 아프고, '3분 진료'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주치의가 더 절실하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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