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사강의 LIKE A MOVIE] 추석 극장가 한국영화 대전, 승자는?

극장가의 올 추석 상차림이 여느 해보다 럭셔리하다.

올해 추석 연휴는 21일 금요일부터 연휴 마지막 날이 26일까지 무려 6일간의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이번 추선 연휴는 사극 영화 3편, 현대극 영화1편으로 BIG4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4편 모두 100억 원대의 순제가 투입된 대작이다. 4편을 합치면 제작비만 해도 575 억 원으로 1500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수 있다. 배급사들은 외화를 포함해 경쟁구도를 고려하면 4편 중 2편은 흥행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도 '명절=사극' 공식이 통할까? 아니면 새로운 공식의 영화가 판도를 바꿀까. BIG4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며 과연 어떤 영화가 승자가 될지 미리 점쳐보자.

물괴
물괴

◆물괴=가장 먼저 출격한 영화는 '물괴'로 판타지 사극이다. 조선 시대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물괴라 불리는 괴이한 짐승과 이에 맞서는 이들의 사투를 그린다. 중종 22년, 인왕산에 흉악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물괴와 마주친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살아남아도 끔찍한 역병에 걸려 고통 속에 결국 죽게 되어 한양 전체가 공포에 떨게된다. 이 소문을 접한 중종(박희순 분)이 초야에 묻혀 사는 옛 내금위장 윤겸(김명민 분)을 궁으로 불러들여 물괴 수색대를 조직한다. 물괴를 쫓던 윤겸과 수색대는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끌어올린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사극과 크리쳐 장르의 만남이라는 것. 괴생명체의 등장과 당대 정치상을 엮어 구성한 플롯은 '조선왕조실록'의 '괴이한 생명체'라는 기록에 기반을 뒀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탄생한 물괴의 구현이 다소 비호감이긴 하지만 기술적 측면만 놓고 본다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보다 한 수 위다. 다만 뒤로 갈수록 서사의 힘이 쳐지고 혜리의 고르지 못한 연기가 아쉬운 대목이다. 가장 먼저 개봉하여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한 만큼 경쟁작들이 오픈되기 전까지 한 동안 정상을 유지하며 관객몰이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곧 개봉할 대작 영화들의 도전을 받아야 한다.

안시성
안시성

◆안시성='안시성'은 빅4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영화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로 전해지는 안시성 전투를 그린 액션 사극이다. 역사에 단 한 줄로 기록된 '안시성 전투'를 기반으로 영화화는 시작되었다. 고구려 시대는 그간 영화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시대지만 오히려 제작진에게는 상상의 여지가 많아 매력적인 소재였다.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당나라 태종은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의 변방 안시성을 침공한다. 20만 명에 달하는 당나라 최강 대군과 5,000명에 불과한 안시성 군사가 맞선다. 40배의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전사들은 당나라에 맞서 88일간 싸워 이긴다.

명당

'명량' 이순신 역의 최민식 때문이었을까. 그 동안 사극의 위인 역은 관록있는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다. '안시성'은 통념을 깨고 조인성, 박성웅, 남주혁 등 젊은 주연들을 내세우며 신선한 매력을 더했다. '젊고 섹시하고 현대적인 사극을 만들고 싶었다'는 김광식 감독의 빅픽쳐는 성공적이었던 편. 물론 허점도 드러난다. 박성웅의 중국어 연기는 중국어를 모르는 관객이 봐도 어색했으며, 정은채와 설현이 분한 여성 캐릭터는 기능적으로만 등장할 뿐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관전 포인트는 단연 네 번에 걸쳐 등장하는 대규모 전투 장면. 주필산 전투와 두 번의 공성전, 안시성 전투의 핵심인 토산 전투 등 스펙터클한 전투신은 스펙터클한 볼거리다. 7만평 부지에 11m 수직성벽 세트, 180m 길이의 안시성 세트, 5000평 규모의 토산 세트를 실제로 제작해 현실감을 더했다.

협상
명당

◆명당='명당'은 '관상' '궁합'에 이은 역학 시리즈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다. 조선말을 배경으로 왕을 꿈꾸는 흥선이라는 실제 인물이 등장하고, 그 외에 허구의 인물들을 배치해 실제 역사 위에서 상상을 더해 완성시켰다. 영화는 헌종이 세도정치에 휘둘리던 시대를 배경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 했던 이들의 사연을 따라간다.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재주를 지녔다. 그는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 씨 가문의 계획을 막다 가족을 잃는다. 13년 후, 복수를 꿈꾸는 박재상 앞에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 분)이 나타나 함께 장동 김 씨 세력을 몰아낼 것을 제안한다. 뜻을 함께한 두 사람은 김좌근(백윤식 분)과 그의 아들 김병기(김성균 분) 부자에게 접근하고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서로 다른 뜻을 품는다.

안시성이 젊은 배우들의 스타 파워였다면 '명당'은 베테랑 배우 파워가 관전 포인트다. 백윤식, 유재명, 조승우, 지성 등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들이 중심을 잡고 있다. 이미 '타짜'에서 환상 케미를 보여준 백윤식과 조승우는 함께 한 화면에 나타나기만 해도 전율이 전해진다. 이들은 영화를 무게감 있는 극으로 승화시킨 주역이다. 특히 지성은 이 작품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짙어지는 광기 어린 표정은 서늘하고 묵직한 기운을 불어넣어줬다.

하지만 플롯 근원적인 부분에서 이야기를 겉도는 캐릭터가 있다. 하필 그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 조승우라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올바른 길을 가려는 박재상의 뜻은 계속해서 좌절되고, 결국 캐릭터에 힘이 빠져버리게 된다. 갖출 건 다 갖췄지만 진행이 전형성을 뛰어넘지 못한 것. '흥선이 왕위에 대한 욕심을 가진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결과다. 대신 '명당'은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관객에게 화두를 던지고, 여운을 남긴다. 욕망에 고뇌하는 젊은 흥선의 만나는 것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다.

협상
협상

◆협상=빅4 중 유일한 현대극인 '협상'은 인질범과 협상가를 내세워 한국영화에서 다뤄진 적 없던 협상가를 소재로 했다. 윤제균 감독의 JK필름이 제작하고, '국제시장' 조감독 출신 이종석 감독이 연출을 맡아 안정적인 구조로 판을 짰다.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경위 하채윤(손예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아 최고 협상가지만 긴급 투입된 현장에서 그는 인질과 인질범 모두 사망하는 사건을 겪고 슬럼프에 빠진다. 회의를 느낀 그는 사직서를 반려한다. 그러나 쉬고 있던 채윤에게 새로운 사건이 위임된다. 경찰청 블랙리스트에 오른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현빈)가 태국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를 납치하고 채윤을 협상 대상으로 지목한 것. 민태구는 이유도, 목적도, 조건도 없이 인질극을 벌이고, 채윤은 그를 멈추기 위해 물러설 수 없는 협상을 벌인다.

협상

독특한 설정 덕분에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대부분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구는 인질을 가둔 창고에서, 채윤은 협상 테이블에서 모니터를 통해 협상하게 된다. 관건은 극 중 인물이 서로 만나지 않은 상황에서 2시간을 팽팽하게 끌고가야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인질극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조성하고, 신선한 소재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협상'은 여러모로 '시카리오'시리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수작으로 평가받았던 '시카리오'와는 달리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절대적인 악이었던 태구가 의로운 악역으로 드러나며 몰입감이 저해된다. 시작은 스마트했지만 그 끝은 신파로 귀결되며 영화는 관객의 감수성에 기대어 협상을 시도한다. 정작 영화 속에 '협상'은 없었다.

이사강 CF·뮤직비디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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