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의 한센병 환자 수용소인 애양원에서 구호 사업과 전도 활동을 펼치던 손양원 목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3년의 옥고를 치렀다. 해방과 함께 풀려났으나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이 발생했고, 두 아들을 좌익의 손에 잃었다. 좌익들은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두 아들을 끌고 가 처형했다.
손 목사는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의 아들을 총살한 범인을 양자로 삼아 목회자로 키우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6·25가 발발하고,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데도 그는 "1천 명의 한센병 환자를 돌봐야 한다"며 피란을 거부했고, 1950년 9월 28일 인민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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