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어르신들은 심한 감기같은 질병으로 아픈 아기를 보며 두발 동동거리는 어린 부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란다고 아프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께 여러 차례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정말 신기하게 맞았다. 심한 감기를 앓고나면 기어다니던 내 딸은 두발에 힘을 주며 일어섰고, 또 아들은 생애 첫 걸음을 떼었다. 정말 자란다고 아픈거구나!
또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다. 뜨거운 사랑 끝에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픈 가슴이 있다는 건 그 만큼 뜨거운 심장을 가졌다는 증거야"라고 첫 사랑의 아픔을 겪는 후배에게 토닥이며 해준 말이다. 정말 자란다고 아픈 거였다!
그런데 나도 내 아이들처럼, 내 후배처럼 최근 들어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젊은 날 놀면서도 밤을 지새운 적이 없는 내가 어느날 갑자기 별일도 없는데 잠 못 이루기도 하고, 감기가 걸리면 한달씩 간다는 부모님 말씀처럼 여러 날 병원에 다녀도 감기가 잘 낫지 않는다. 나도 자란다고 아픈걸까?
나보다 두 서너 살 많은 지인은 늘 손수건을 가지고 다닌다. 예쁘게 화장하고 공식석상에 가지만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 때문이다. 더군다나 추운 겨울이라면 그 민망함은 최고조가 된다. 많은 중년 여성들이 우울증과 관련하여 약물복용을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변화는 단지 여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상담실에 찾아온 중년 남성들은 요즘 자신들이 이상하다고 토로한다. 왕년에 잘 나가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의 중년남자는 드라마 시청에 갑자기 눈물이 나고, 후배들에게 저하된 업무능력을 들키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며 지낸다. 갑자기 나는 왜 이럴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여성 호르몬이 많이 생겨서 그럴까? 예전에는 거뜬이 해낸 일들이 자신이 없어지고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아 긴장까지 한다. 그리고 아무일 없는 듯 또 아침이면 묵묵히 출근한다.
갑작스레 체감하는 노화현상은 성인이 된 지 20년이 지난 중년기에게 적지않은 당혹감으로 다가온다.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느날 낯설어지는 느낌 그게 바로 중년기이다. 정말이지 신체적 변화와 심리적 변화가 동시에 찾아와 격동하는 '제 2의 사춘기'란 표현이 확 와닿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중년기의 힘든 상황에 대한 위로와 격려는 대학입시 속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하고, 사춘기 자녀만큼 당혹스런 경험은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듯 상담실에 와서 겨우 하소연할 뿐이다. 왜 이들은 아픔을 숨겨야만 할까?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처럼 당당히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지시라도 받은 걸까? 내 생각에 그건 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노화는 자라는 성장이 아니라 퇴화되는 소멸로 보기 때문이다.
'반백년을 살아온 어느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어느날 자궁에 병이 생겨 자궁적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전날 밤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모여 내일이면 사라질 자궁과 이별의식을 치렀다. 딸 둘! 아들 하나! 열 달동안 잘 품고 튼튼히 나아줌으로써 이제 자궁의 역할을 다 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그녀의 늘어진 배 위에 가족들은 따스한 손을 얹고 고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내일이면 임무를 완결하고 떠나는 자궁에게 말이다.
이처럼 노화는 소멸이 아니라 완성되기 위한 자람이다. 소멸되고 퇴화하는 아픔으로 참고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서 완성되려 아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자신의 생명을 완성하는 그날까지 모두 자란다고 아프다. 중년기도 자란다고 아프다!.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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