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보수의 아이콘

대구 능인고 교사

요즘 일부 언론에서는 거친 말로 정부를 비난하는 젊은 정치인들에게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 말을 보수에 대한 오해와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어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保守)에 대해 사전에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합당하지 못한 데가 있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사전에 등재된 정의처럼 변화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진짜 보수는 과거의 제도와 습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守舊)와는 다른 것이다.

예전에 경주 최부잣집의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보수를 현실에 맞게 재정의하자면 '급격한 변동보다는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는 원리나 태도' 정도가 될 수 있다. 경주 최부잣집이 집안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탐욕에 대한 경계,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새로운 것에 대한 포용력, 그리고 품격 있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좀 더 벌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일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를 외면하는 것은 올바른 보수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개판'이라고 하고, '독재'라고 거칠게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는 일단 말의 품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뉴스거리는 될 수 있지만 생산적이지는 못하다. 정부에 대한 비난은 경제 관료들보다 더 나은 지식과 통찰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보다 나은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 과정이 없는 말은 사회에 불필요한 논란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의 감정에 영합하는 말은 통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말로 감정을 배설하지 않는다. 자신이 전적으로 옳고 반대편이 전적으로 그르지 않는 이상 그 말들은 불쾌감을 유발하고, 공동체의 유대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대신 말 한마디를 무겁게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나라가 개판이라면 국회의원으로서 잘못된 부분을 하나씩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진짜 보수의 아이콘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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