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패션조합 보조금 유용 의혹]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입찰 심사

대행업체에 유리하게 예산 재배정…디자이너 항공·체류비 떼이고도 묵묵부답
입찰 배점도 특정업체 밀어주기 정황…심사위원 구성도 전문성 떨어져

특정업체 일감 몰아주기와 부적절한 보조금 사용 등의 의혹(본지 15일자 1, 3면 보도)을 받고 있는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이하 대구패션조합)이 불투명하게 국·시비를 집행하고 입찰업체 선정시 짜맞추기식 심사를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애초 계획된 비용보다 많은 예산을 행사 대행업체에 배정하거나 지출 증빙이 불가능한 개인 계좌로 송금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입찰 업체 선정 과정에서 결정권자인 이사장을 심사위원에 포함시키고, 특정업체에 유리하게 점수를 배점하는 등의 의혹도 제기됐다.

◆불투명한 예산 재배정과 지출내역

대구패션조합의 의심스러운 예산 집행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8~12월 중국 3개 도시를 순회한 '중국 신시장 개척 사업'이다. 당시 대구패션조합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국비 보조금 2억원을 받아 패션쇼를 진행했다.

대구패션조합은 운영비 1억6천600만원, 여비 및 업무추진비로 각각 3천500만원과 500만원을 배정한 예산 사용 계획서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했다.

운영비에는 행사 대행업체에게 지급하는 수행 용역비 3천300만원을 비롯해 전시공간 등 임차료 3천만원, 패션쇼 대행사 및 사진·영상·방송제작사 인건비 등 일반용역비 1억원이 포함됐다. 여비와 업무추진비는 행사 진행 과정에 필요한 실비로 사용된다.

그러나 대구패션조합은 사업 수행이 결정되자 예산 재배정을 요청했다. 여비와 업무추진비에서 2천110만원을 빼내 행사 대행업체들에게 배정한 것. 이 예산은 행사를 수행한 전시대행사 D업체와 영상 제작 등을 담당한 지역 방송사에 돌아갔다.

현지 통역비 집행 과정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대구패션조합은 사업 수행 기간을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1인당 4~6개월로 잡은 뒤 통역전문가 5명의 인건비로 1천500만원을 배정해 해외 송금 형태로 지급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 신시장 개척 사업차 머문 기간은 옌지(8월31일~9월3일), 다롄(9월21~24일), 정저우(12월 21~24일) 등 3개 도시에서 각각 나흘씩 모두 12일에 그쳤다. 더구나 통역사 중에는 공인 통역사가 아닌 현지에 거주하는 일반인이 포함돼 세금계산서 발급 등도 불가능했다.

대구패션조합 관계자는"예산을 재배정한 건 당시 한반도 사드 설치 여파 등으로 중국 내 행사 장소가 변경되거나 동반 업체 수가 바뀌는 등 변동이 예상됐기 때문"이라며 "통·번역비는 현지 체류 기간 외에도 국내에서 패션업체들과 현지 바이어 연락 등을 위해 장기간 배정했다"고 해명했다.

◆선지급한 항공·체류비 날려

불투명한 예산 집행은 이뿐 만이 아니다. 대구패션조합은 지난해 10월 2017 대구컬렉션 개최를 앞두고 이탈리아 유명 남성복 디자이너인 비안코니를 초청해 국내 패션브랜드사와 협업 패션쇼를 하겠다고 홍보했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의 항공비와 체류비 명목으로 지원받은 시비 330만원 중 315만원을 이탈리아 패션 전문에이전시 S사 대표에게 송금했다.

그러나 비안코니는 대구컬렉션이 열리기 닷새 전에 "한국에 올 수 없다"고 통보했고, 비안코니와 협업하려던 업체가 미리 수입한 비안코니 의상을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 과정에서 미리 지급한 항공·체류비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구패션조합은 비안코니나 에이전시측에 어떠한 보상이나 환불도 요구하지 않았고, 실제 항공권이 예약됐는지와 지출증빙 여부도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역 패션업계에서는 '비안코니가 유령업체'라거나 '거짓 초청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대구패션조합 관계자는 "이미 쓴 돈이니 어쩔 수 없고, 패션쇼가 임박한 상황에서 항공료 등을 환불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면서 "디자이너가 오진 않았지만 해당 브랜드 의류로 패션쇼를 했으니 돈을 날렸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 '심사점수 조작' 의혹도

대구패션조합은 원하는 협력업체를 선정하려 입찰 심사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해 중국 신시장 개척 사업에서는 D사가 행사 수행 용역을, 지역 한 방송사가 미디어(영상 기록 및 방송) 용역을 각각 따냈다.

문제는 같은 행사를 두고 두 용역 입찰의 심사 기준이 달랐다는 점이다. D사를 선정한 행사수행 용역의 경우 '가격' 점수를 100점 만점 중 20점으로 배점했다.

이는 기존에 대구패션조합이 적용했던 심사 기준보다 10점 높은 배점이다. 반면 미디어 용역의 '가격' 점수는 예전처럼 10점을 유지했고, 5점 만점이었던 지역 가산점을 15.5점으로 높였다. 결국 가격이 저렴했지만 역외 업체로 기존에 중계를 하던 전문 패션방송사는 심사에서 탈락했다.

중·고교생 진로체험 사업인 '아임패션이'의 올해 입찰 과정에서는 점수 몰아주기 정황도 확인된다. 올해 이 사업에는 기존 대행사인 T사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모델 육성업체 M사, 지역 모델아카데미 A사 등 3개 업체가 응찰했다.

본지가 입수한 심사평가표에 따르면 심사위원 4명 중 1명은 배점이 60점 만점에 이르는 '주관적 평가' 항목에서 M사에는 60점 만점을, 다른 두 업체에는 다른 심사위원의 점수(37~58점)보다 20점 이상 낮은 30점과 15점을 줬다.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평균으로 매기는 입찰 심사 특성을 감안하면 자신의 점수가 제외될 것이 뻔한 평가를 내린 셈이다.

결국 M사는 다음으로 가장 높은 점수의 상한선이 59점이 됐고, 가장 낮은 15점을 받은 T사는 최저점의 하한선이 16점으로 낮아지는 상황이 됐다. 또 다른 심사위원이 차순위로 높거나 낮은 점수를 주면 낙찰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한 심사위원은 M사에 차순위 최고점인 58점을, T사에는 자신의 배점 중 가장 낮은 54점을 줘 점수 차이를 4점으로 벌렸다.

또한 20점이 배정된 '가격' 점수도 업체마다 배점 차이를 1~2점이 아닌, 5점 간격으로 주면서 가장 입찰가가 낮은 업체가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사업수행능력을 따지는 객관적 평가(20점 만점)에서 입찰 업체 중 가장 높은 15점을 받은 T사는 가격과 독창성과 실행 가능성 등 주관적 평가에서 M사에 밀려 입찰에서 탈락했다.

심사위원 구성에서도 의구심을 낳고 있다. 지금까지 대구패션조합은 사업 수행의 책임·결정자인 이사장을 용역 입찰 심사위원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올 들어 아임패션이 행사를 비롯해 수 차례에 걸친 입찰 심사에 이사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더구나 심사위원 수가 3, 4명에 불과하고, 교수와 패션 비전문가인 언론인 등도 포함됐다. 대구패션조합 한 이사는 "비전문가를 포함시켜 들러리를 세우고 일부 심사위원이 뜻을 맞추면 얼마든지 원하는 업체를 선정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구패션조합 관계자는 "입찰마다 심사 기준이 다르고, 가격 배점차를 키운 것은 행사 용역업체 경우 가격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끼리 대화조차 하지 않고, 언론인과 현직 교수 등을 배석한 것은 공정성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해명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