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노을 지는 호수에 상반신만 드러낸 채 서 있는 거대한 해골이 커다란 책을 펼쳐들고 있었다. 기묘하면서 아름다운 해골과 펼쳐진 책이 마치 무대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댓글에는 합성사진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나라에 있는 공연장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정보는 알 수가 없었다.

그곳이 공연장이라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공연을 하는지도 무척 궁금했다. 몇 년이 지나 그것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3국이 만나는 국경에 위치한 알프스 빙하가 만들어 낸 중부 유럽의 보덴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본 사진이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무대라는 것도 알아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여름 날 저녁, 호숫가의 객석에서 물 위에 떠 있는(Floating Stage) 스펙타클한 무대를 감상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공연 무용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당연지사. 지난해 봄부터 계획을 세우고 예매를 했다. 7월이 되려면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 좌석 대부분이 팔렸었다. 공연날짜에 맞추어 티켓팅을 하고 여행스케줄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유 후 기차로 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가는 내내 설레였던 기대는 역시나 배신하지 않았다.
내가 본 사진처럼 초대형 무대는 2년에 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바뀌며, 객석과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 2017-18년 프로그램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유명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에 의해 세워진 무대에는 붉은 매니큐어를 바르고, 왼손에는 담배를 오른손에는 선명한 칼자국이 새겨진 높이 25m, 넓이 30m의 거대한 여인의 두 손이 객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 안에 펼쳐져 있는 18장의 카드들은 쉴 새 없이 뒤집히고 바뀌었다.
호수에서 배를 타고 등장하는 출연자들과 수영까지 하는 카르멘, 상하로 움직여 수시로 물에 잠기는 무대와 이를 활용한 연출 등 많은 것들이 감동을 자아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관객들의 태도였다. .
브레겐츠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녁이 될수록 빗방울은 굵어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공연 취소는 없다고 했다. 또, 30년 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7천여 명의 관객은 당연하다는 듯이 비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2장, 3장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비는 더욱 더 세차게 내렸다.
놀란 것은 관객들의 관람태도. 비옷을 고쳐 입을 때 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객석에서는 아무 미동도 없었다. 공연 후 커튼콜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박수만 쳤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 커튼콜 때 사진이나 영상을 찍은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순간 사람들이 '핸드폰이 없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세찬 비를 맞으며 끝까지 보내는 박수소리는 서로에 대한 경의 같았다. 이 순간을 함께 오롯이 느끼는 관객들이 있기에, 공연의 감동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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