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를 자랑한다는 것은 가진 게 '옛날이야기밖에' 없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쩌랴, 유년을 떠올리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내 고향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집 안에도, 집 밖에도, 텃밭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는 죄다 감나무였다. 아버지는 큰언니가 태어나자 고욤나무에 접붙인 '고종시' 다섯 그루를 집 안팎에 심었다. 아버지가 첫딸에게 주는 기념식수였던 것이다.
'고종시'는 옛날, '고종황제께 진상한 감'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 둥시가 지천인 지방에 고종시는 귀한 품종이었다. 근동에 우리 집 외에는 그 감나무를 볼 수가 없었다. 고종시 홍시 맛을 보면 다른 감은 안중에 없다. 다른 홍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동구 밖 과수원길'은 그야말로 이국의 노래였다. 산골 마을에 과수원은커녕 사과와 배 등은 행사 때나 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주인 없는 산딸기, 개복숭아, 머루, 다래, 어름, 밤, 대추를 산이나 들에서 채취하여 먹었을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자부심이 있었다면 '감'이 제사상에 오른다는 것이다. 고욤나무에 감나무 생가지를 잘라 접붙일 때, 그 통증을 견디고 새살을 내려야만 과일이 달린다. 사람도 이처럼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바른 인격자가 된다는 뜻을 품고 있는 과일이 바로 '감'이 아니던가.
봄이면 감꽃 목걸이 만들었고, 여름이면 감나무 그늘에 멍석을 깔아놓고 소꿉놀이를 했다. 감나무에 찾아와 자지러지듯 애롱거리는 매미도 소꿉놀이 손님이었다. 고추바람 불어오면 감잎은 우르르 땅으로 내려온다. 아침마다 감잎을 쓸어모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으나 크고 두툼한 감잎을 주워 책갈피에 꽂는 재미는 쏠쏠했다. 거추장스러운 부산물은 다 내려놓고 오로지 동글동글한 몸뚱이만 가지에 매달고 있는 주황빛 감덩이. 햇살로 온몸을 달구어 익어 가는 허공에 핀 감덩이 꽃은 늦가을에 잠깐만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땡감은 조심해서 다루었다. 흠집이 있거나 무른 감을 사용하면 곶감에 거뭇한 흉터가 생긴다. 아버지는 처마에 새끼줄 감 타래를 걸어놓고 한 뼘 남짓한 싸리나무 꼬챙이를 간격에 맞게 끼웠다. 꼬챙이에 꿰어 말리는 감은 밤낮의 기온 차에 의해 60여 일의 건조 기간을 거친다. 그제야 타닌이 사라지고 단맛이 생기는 것이다. 곶감은 '시설(枾雪)'인 하얀 분가루로 화장까지 마친다. 꽃피어 열매 맺고, 자연 상태에서 건조 시켜 곶감으로 탄생하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꽂이에 꽂은' 감은 그렇게 기다림 속에서 곶감으로 재탄생 되는 것이다.
텃밭에서 따온 감을 건조기에 넣어 감말랭이 만들었다. 땡감으로 장아찌 만들기가 번거롭다면 감말랭이 장아찌를 만들어도 별미다. 감말랭이에 고추장과 조청을 넣어 버무리면 완성이다. 감말랭이의 당도를 고려해서 조청을 가감하면 된다.

감나무 아래에서 뛰어놀고, 감을 먹으며 성장한 사람은 떫은 말을 삼킬 줄 안다. 시간이 지나면 떫은맛이 단맛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체득한다. 감이 익어 가듯 사람도 익어 간다.
고향 집 고종시 감나무의 수령은 현재 67살이다. 큰언니와 동갑내기인 셈이다. 감나무는 한 터에서 5대의 삶을 지켜보았다. 감나무는 고향 집과 함께하는 숨결이며 전설이다.
tip: 감에는 비타민 A와 C가 많다. 감기 예방과 숙취 등에 좋으나, 변비가 있는 사람은 의외로 고역을 치르기도 한다.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딸 때는 조심해야 한다. 감나무 가지는 휘어지지 않아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부러진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댓글 많은 뉴스
[단독] 예성강 방사능, 후쿠시마 '핵폐수' 초과하는 수치 검출... 허용기준치 이내 "문제 없다"
與 진성준 "집값 안 잡히면 '최후수단' 세금카드 검토"
[르포] 안동 도촌리 '李대통령 생가터'…"밭에 팻말뿐, 품격은 아직"
안철수 野 혁신위원장 "제가 메스 들겠다, 국힘 사망 직전 코마 상태"
이재명 정부, 한 달 동안 '한은 마통' 18조원 빌려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