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희정의 엄마가 말린 남미여행](11)보고타로 가는 힘든 여정

보고타 골목 곳곳에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그래피티들이 그려져 있다.
보고타 골목 곳곳에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그래피티들이 그려져 있다.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 가장 북서쪽 끝에 위치한 나라다.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면하고 있으며 동쪽으론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남쪽으론 에콰도르, 페루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중남미의 대표적인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구성된 나라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서둘러 짐을 챙겨 쿠스코 공항으로 갔다. 리마로 가서 보고타행 국제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그런데 항공사 직원이 예약번호가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공석이 생겨야 탈 수 있는 티켓이었는데 잘 모르고 구매해버린 탓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버스 터미널로 갔다. 다행히 24시간을 달려 비행기 이륙 4시간 전 리마에 도착하는 버스 편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도착 시간이 지나도록 버스는 서지 않았다. 물어보니 3시간은 더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카드가 없어서 항공권을 취소도 못하고 너무 초조했다. 심지어 버스는 계속 다른 정류장에 섰다. 결국 우린 중간에 내려서 택시를 탔고, 열심히 달렸지만 이륙 30분 전에 도착하여 탑승할 수가 없었다. 고생해서 리마까지 왔는데 60만원짜리 비행기티켓을 날린 게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보고타를 포기하고 바로 브라질로 넘어갈까도 고민했지만 보고타행 티켓을 다시 구매했다.

보고타 골목 곳곳에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그래피티들이 그려져 있다.
보고타 골목 곳곳에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그래피티들이 그려져 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정식 명칭은 '산타페데보고타'이며 안데스산맥 기슭의 고원지대에 자리한다. 4계절 동안 기온의 변화가 작고 연평균 14℃ 정도로 온난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남아메리카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여성이 여행하기에 가장 위험한 나라 1위로 손꼽힐 만큼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12분마다 성범죄가 발생하는 인도가 4위였으니 보고타의 치안은 말 안 해도 그 심각성이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보고타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최근엔 '트랜스 밀레니오'라는 대중교통이 생겼는데 두세 대의 버스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겼다. 지하철 개찰구와 비슷하게 생긴 곳을 통과하면 차량을 탑승하는 곳이 나온다. 도로엔 트랜스 밀레니오 차로가 따로 있어서 보고타의 교통체증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다. 역마다 경찰이 두세 명씩 지키고 있었는데 길도 친절히 알려주었다.

한국을 좋아하는 아저씨의 집안에 있던 태극기와 태권도 훈련기구
한국을 좋아하는 아저씨의 집안에 있던 태극기와 태권도 훈련기구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

한참 숙소를 잡으러 걷다가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과 마주쳤다. 보고타에서 태권도복이라니! 너무 신기했다. 옆엔 아이들의 아빠가 있었는데, 나중에 이야길 해보니 태권도를 사랑해서 한국에 몇 번이나 왔던 아저씨였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 아저씨는 한국인을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자기 가족들이 사는 집에 묵어도 좋다고 했다. 우린 겁도 없이 그 집에서 하루 숙박을 하게 되었고 가족들 모두 우릴 반갑게 맞아주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몬세라테로 이동했다. 몬세라테는 해발 3,100미터가 넘는 산으로, 보고타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고, 산악열차(푸니쿨라)나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정상까지 가면 몬세라테 성당과 시장도 있는데, 주말이 되면 2, 3만 명이 방문하는 곳이다. 몬세라테 성당에 있는 검은 마리아상은 스페인의 식민지배 당시 주민들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였다고 한다. 도심에 있을 땐 날이 더웠는데 정상으로 올라오니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멋진 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내려왔다. 다음 코스는 볼리바르 광장이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콜롬비아 초대 대통령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이곳은 대성당, 대통령궁, 의회 등이 둘러싸고 있고 주변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이 있다. 점점 하늘이 어두워져서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규모의 금 박물관. 건축물과 인테리어가 상당히 현대적이었다.
거대한 규모의 금 박물관. 건축물과 인테리어가 상당히 현대적이었다.

▶커피와 예술이 공존하는 문화의 도시

다음 날 첫 번째로 간 장소는 '금 박물관'이었다. 남아메리카에 황금 제국 '엘도라도'가 있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수많은 탐험가는 황금을 찾아 나섰다. 실제로 대항해시대가 끝난 직후 금광이 터졌고 엄청난 양의 금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황금에 얽힌 엘도라도의 전설과 영광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이 박물관은 황금세공 3만 4000점을 수장, 전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이 전시된 박물관이다.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예술가 보테로의 박물관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예술가 보테로의 박물관

이곳엔 보테로의 작품 123점 외에도 보테로가 수집해온 피카소, 달리, 샤갈, 미로 등의 조각과 그림 87점이 기증되어 함께 전시돼있다. 보고타엔 53개의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도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과연 '남미의 아테네'라고 불리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박물관이 있는 거리 뒤쪽엔 좁은 골목 가득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는 곳이 있다. 보고타의 그라피티를 보고 있자니 상파울루가 생각났다. 보고타의 그라피티는 상파울루와는 분위기가 살짝 달랐는데, 아기자기하고 색감도 좀 더 따뜻한 느낌이다. 그런데 한 청년이 그곳에서 멜론 하나를 3천원 정도에 팔고 있었다. 예림이와 난 당장 그 멜론을 사고 싸다며 기분 좋아 했다. 그런데 몇 분 후 우린 멜론 장수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촬영 때문에 시장 배경을 연출했고, 채소며 과일이며 촬영에 사용하고 난 것들을 모두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샀던 멜론이었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청년의 발상이 귀엽기도 했다. 촬영 규모가 굉장히 컸는지 사람들이 들고 가도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어서 우리도 한 상자 가득 챙겨서 숙소로 들고 왔다. 보고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커피다.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커피 프랜차이즈인 '후안 발데즈' 커피도 훌륭했지만, 난 해 질 무렵 '쁠라조레타 초레 데 퀘베도'(Plazoleta Chorro de Quevedo)공원에 있던 이름 모를 하얀 단독건물에 카페를 잊을 수 없다. 어두운 분위기에 푹신한 담요가 덮여있던 천 소파에 앉아 마신 카푸치노는 정말 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내가 커피 맛에 무척이나 감동하니 사장님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작은 머그잔도 하나 선물로 주셨다. 그 머그잔은 아직도 내 방 화분 옆에 가만히 놓여있다. 아직 아까워서 쓰진 못했지만, 그 잔을 보면 콜롬비아 커피 향이 코끝에 아른거리는 듯하다.

황희정 디자이너 https://www.instagram.com/_hyi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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