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歲畵)의 사전적 의미는 새해를 축복하는 뜻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 받는 그림을 말한다. 요즘 청년세대에겐 생소한 낱말로 들리겠지만, 장년이나 은퇴세대는 새삼 추억으로 떠오르는 정감 어린 민화(民畵)의 형태로 보면 된다.

예부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 질병이나 재난을 막고 행운을 기원하는 '벽사기복'(辟邪祈福)의 상징으로 '춘축문'(春祝文)을 덧붙인 그림 한 폭씩 그려 새해 인사를 나누는 세시풍속이다.
화법(畵法)이나 필력(筆力)에 상관없이 화선지에 아무나 마음내키는 대로 십이지상(像) 중 그 해의 띠 동물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여백에 춘축문을 일필휘지(一筆揮之)한 것이다. 주로 집 대문짝에 붙이는 일종의 부적(符籍)으로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畵)라고도 하지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은 예부터 요사스러운 귀신을 쫓아낸다는 이른바 문신(門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온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대대적인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대도시 뿐 아니라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에 이르기까지 대문 달린 주택이 점차 줄어들고, 이 같은 미풍양속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요즘엔 전문화가들이나 취미삼아 서화를 익힌 사람들에 의해 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마땅히 붙일 곳이 없다고 한다. 세화를 그려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 아파트 현관 벽면에 붙여두고 드나들며 한번씩 눈여겨 보기도 하지만 이마저 우수·경칩이 지나 봄이 오면 떼어낸다.
올해는 기해년(己亥年) 돼지띠 해. 60년 만에 황금돼지가 돌아왔다며 새해 벽두부터 행운을 바라는 기복적 수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 얄팍한 상혼이 스며들어 시중 금은방엔 각양각색의 선물용 황금돼지상이 등장하고, 역술인들은 신년 신수를 보는 고객들을 상대로 '액땜을 한다'며 고사상에 흔히 쓰이는 돼지머리를 부적으로 그려주고 있다.
맹목적인 기복 신앙보다 일상의 마음자리를 올바르게 지키기 위해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송축(頌祝) 세화 한 폭씩 주고 받으며, 고유의 미풍양속을 되살리는 것도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고, 세대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좋은 전통과 양식은 새 시대에 맞게끔 변형해서, 이어가는 것이 좋다. 서투르지만 돼지 그림을 그린 다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모든 일이 잘 돼지!' 등 간단한 축문을 쓴 이메일을 보내거나, SNS 상에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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