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미세먼지, '자업자득'

곽흥렬 수필가

곽흥렬 수필가
곽흥렬 수필가

연막탄을 터뜨린 듯 온통 시야가 흐릿하다. 하늘은 잿빛으로 잔뜩 내려앉았다. 희뿌연 대기가 숨을 답답하게 한다. 거대한 그물로 옥죄어 오는 것 같은 이 공포스러운 상황이 마음까지 우울하게 만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다. 게다가 걸핏하면 초미세먼지 경보까지 발령되는 바람에 집 바깥으로 나가기가 겁이 난다. 예전에는 아예 용어 자체도 들어보지 못했던 미세먼지 이야기가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근래 들어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같은 현상에 앞으로가 더욱 걱정스럽다.

가만히 하늘에다 눈길을 주고 있으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미세먼지라는 괴물이 세상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그러면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한 장면이 그려진다. 소설에서는 안개가 작품 속 무대인 무진(霧津)을 휘감고 있는 상황을 두고서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고 표현했지만, 지금은 그 안개 대신 미세먼지가 사람들을 어디론가 유배시켜 버릴 듯한 기세다.

불현듯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여기서 업이란 것이 무슨 뜻이던가. 불가(佛家)에서는 우리가 순간순간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하나하나의 행위들로 인해 우리 자신이 받게 되는 결과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자업자득은 자연 해석이 분명해진다. 내가 지은 업으로 인연하여, 내가 받게 된 과보라는 의미가 되지 않는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탓이다. 뒷일은 생각지도 않은 채, 그저 편리한 것만 알아서 노상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필연적으로 매연을 내뿜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생필품들을 만들어 내느라 수많은 공장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에 나도 너도 함께 질식해 간다. 그렇다고 아예 쓰지 않고는 일상생활 자체를 영위하기가 어려우니 참으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대기오염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지만 않을 뿐, 어차피 그로 인해 모두가 피해자다. 단지, 그 죽음이 얼마간 유예되어 있을 뿐이다. 직접적인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매연을 뿜어대는 짓이 한편으론 얼마나 이기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 이 업이 분명히 가르쳐준다. 인과법이야말로 절대 불변의 가치를 지닌 영원한 진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지금 생활 여건이 풍족해졌다고, 과연 예전보다 삶의 질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한번 냉정히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고 일단 편리를 맛본 사람이 그런 달콤한 생활을 포기하기란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머잖아 천길 낭떠러지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 번연히 예견되는데도,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서 달리는 열차를 멈출 생각을 않고 가만히 앉아 서로 바라만 보고 있다.

이제 앞으로 어쩔 것인가. 브레이크 고장 난 열차처럼 이대로 계속 질주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이 상황이 몹시도 답답하고 너무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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