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아버지의 눈물

필자가 어린 시절 찍은 가족 사진. 아버지(고 김길우 씨), 어머니, 이모, 그리고 형과 필자.
필자가 어린 시절 찍은 가족 사진. 아버지(고 김길우 씨), 어머니, 이모, 그리고 형과 필자.

난 아직도 사람들과 아버지(고 김길우 씨)를 주제로 대화를 하거나 TV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자상한 모습을 보면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우리 아버지가 그리워서다.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버팀목이었으며 안식처였다. 그런 아버지를 산으로 모신 뒤 내려오는 길에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운 것 같다. 땅이 꺼져라 울었다. 겉으로 소리 내 울지는 않았지만 내 영혼이 너무나 슬퍼서 울고 또 울었다.

어느 봄날 하얗게 사과 꽃이 만개한 날 아버지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셔서 병원으로 모셨다. 아버지의 몸을 검진한 의사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 보셔야 한다고 했다. 난 그날 아버지와의 이별을 직감했는지 화장실에서 목 놓아 슬피 울었다. '아직 이별 준비도 안 되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면 난 어떻게 하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 후 우리 곁을 떠나실 때까지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 하셨다. 곧 퇴원해서 같이 운동하자고 하시기까지 했다. 갑자기 위독해지셨을 때 아버지는 그러셨다.

"너희들과 멋진 식당에서 맛있는 것 먹고 싶었는데, 앞으로 보고 싶어 어떻게 하냐?"

결국 돌아가시기 전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끼신 상태에서 말을 못 하시는 아버지는 눈물만 흘리셨다. 내가 태어나서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그날이 두 번째였다. 항상 자식들 앞에서 강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눈물…. 난 아직도 그날의 아버지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년간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였다. 졸업 후에도 매달 고시원 비용과 생활비를 보내주시는데 어느 날은 용돈이 적다고 전화로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정말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묵묵히 그런 철없는 투정을 죄다 받아 주시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버지는 얼마나 속상해 하셨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고 죄스럽다.

비록 그때 바라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원하시던 경찰간부시험에는 합격했다. 아버지는 최종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 친척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셨다. 내가 아버지의 첫 번째 눈물을 본 것이 바로 그날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에게 더 큰 도시에 더 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그들과도 경쟁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미래의 꿈과 희망을 주셨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버스로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읍내까지 내 손을 잡고 시내 서점에 들르셔서 영어 듣기 테이프를 사주셨다. 학교 선생님도 잘하시지만 영어 발음은 아무래도 교재가 나을 수도 있고 도시 학생 수준의 영어 경쟁력을 갖춰야 하신다며….

아버지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매년 학교의 모든 선생님을 집으로 초청하셨다.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셔서 정성껏 대접하셨다. 선생님들이 떠나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그냥 보내지 않으셨다. 당신이 과수원에서 직접 수확하신 사과를 한 아름씩 들려 보내셨다. 우리 아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는 마음을 담았으리라 짐작한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참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논이나 밭으로 가실 때 오토바이 앞에 태우고 다니셨다. 그럴 때면 온 동네가 내 것인 양 친구들 앞에서 기세가 등등하였다. 옆집에 갈 때나 농협 공판장에 갈 때, 약국에 갈 때도 나는 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던 그날도 난 아버지 손을 꼭 잡아드렸다. 이젠 내가 아버지 손을 잡고 여기 저기 여행도 하고, 모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는 참 많을 걸 희생하신 것 같다. 그렇게 위대하고 거인처럼 보인 우리 아버지도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 겨우 두 차례이긴 하지만…. 오랜 방황 끝에 시험에 최종 합격한 아들의 제2의 인생이 펼쳐지는 날 너무 기뻐서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병원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을 예감하신 그날 아버지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난 가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날 이 비가 아버지의 눈물이 아닌가 싶어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우리 아버지가 자식들이 보고 싶어 흘리시는 그런 눈물 말이다.

이제 아버지를 만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 이제 눈물 그만 보이시고 편하게 계세요. 저는 아버지의 눈물도 물론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웃으시는 모습을 더 좋아해요. 사랑해요 아버지!"

경북경찰청 정보과 정보4계장 김강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