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심심해서 그림을 그린다. 아니 호작질을 한다. 그림 낙서를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마음속에 어떤 대상이 떠오르는데 이때 그 심상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 원로화가 전선택 옹은 1922년생이다. 백수(白壽)를 코앞에 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붓을 계속 잡고 있다. 평북 정주 출신으로 일본 가와바다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1946년 월남하여 대구에 정착, 대륜중과 영남대 등서 교편을 잡았다. 화업이 80년을 훌쩍 넘었다. 몸은 비록 휠체어에 의지해 있어도 오감은 젊은이 못지않게 아직도 또렷하다. 규칙적 운동과 그림 그리기가 건강비결이란다.
"그림은 감동을 나타내야 한다. 감동이 없는 그림은 작품이 아니다" 자신의 화풍을 묻자 단호하게 답했다.
전 옹의 그림을 보면 한 점 한 점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파스텔 풍의 화면은 많은 메시지를 던지며 보는 이에게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대상이 무엇이든 친숙미가 없는 것이 없다. 지극히 평범한 듯 하면서도 관람자에게 영감을 주는 그림. 그의 말대로 감동이 샘물처럼 쏟아난다. 인물이든 정물이든 그 어느 것도 허투루 다가오는 것이 없다. 전 옹의 그림 속 꽃은 지난 봄날 본 그것과 같고 인물은 어릴 적 정겨운 외갓집 식구들과 같다.
"나의 회화적 관심은 생활의 사실적 표현과 관념의 조형화에 있다. 이는 단순화된 사실주의적 표현이기보다 나의 내면세계를 투영한 사유의 결과물"라는 주장대로 전 옹은 생활 주변의 정감 어린 소재를 사용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초기에 소묘, 수채화에 천착했다. 이 시기 소재는 닭, 청어, 말과 수레 등 사실적 경향이 강하게 드러났다. 이후 1950년대 후반 자연주의 화풍을 벗어나 점차 대상의 단순화를 추구하며 추상을 시도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작품들은 실향민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화필이 더욱 자유로워져 예술과 삶, 자연을 대하는 작가의 구도적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전선택 화백은 1969년 서창환 신석필 강우문 이복 등과 함께 '이상회'를 창립했으며 1982년 '한국신구상회'를 창립하는 등 대구 미술의 토대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희 학예연구사는 "작가는 추상과 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형식적 실험을 오랫동안 해왔다. 80년 화업을 되돌아보는 회고전을 통해 대구 근현대 미술의 토대 형성과 전개과정에서 전선택 작가의 역할을 연구하고. 대구미술사 연구에 깊이를 더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1950년대부터 2018년 작품을 포함한 최근작 등 전선택 옹의 작품은 5월 19일(일)까지 대구미술관 4, 5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 053)803-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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