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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 성당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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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서울 신촌서 하숙할 때 일요일 아침, 할 공부는 밀려 있는데 시동은 잘 걸리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갈 때도 없다. 돈마저 없으니 아침 먹고 방바닥에 뒹굴며 시간을 죽인다. 신앙심이 두터운 주인 가족들은 식모까지 꽃단장을 시켜 모두 교회로 간다. 이 무렵이면 교회의 차임 벨 찬송가 소리가 요란하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 가장 많이 들려왔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태산을 넘어 험 곡에 가도."도 자주 연주되었다. 교회가 가까이 있는 탓도 있었지만 소리 자체가 너무 컸다. 그러나 성스러운 소리라고 참고 들었다. 어릴 때는 교회에서 종을 쳤는데 세월이 가며 차임벨로 변했다.

인간은 왜 종소리를 의식에 쓰는 걸까? 무당이 굿하며 칼춤을 출 때도 요령을 흔든다. 교회에서는 종각을 만들어 놓고 종지기가 새벽마다 종을 쳤다. 성당도 큰 종을 쳤지만. 미사(Mass) 때, 축성(祝聖)할 때 작은 종을 흔든다. 절에서도 예불하기 전에 사물(四物)을 울리는데 가장 먼저 종을 친다. 신앙인들은 교주의 취향이 쇠 소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타도 대상인 악마가 종소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선지 종교의식에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종을 쓴다.

요즘도 동화사에서는 새벽 예불 때 범종(梵鐘)을 친다. 종소리는 팔공산에서 시내로 내려와 지상과 지옥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濟度)한다. 그러나 대다수 도심의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종소리가 차임벨로 변한 뒤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소음이라고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성직자들은 소리를 낮추기보다 아예 종각을 없애 버린 것이다.

시골 작은 교회에 남아 있는 조그마한 종각을 보면 가슴이 시리다. 어릴 때 만들어진 기억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남는다. 가정불화의 집안에서 자란 사람은 어릴 때 만들어진 분노와 적개심이 어른이 되어도 그 부정적인 에너지는 남아있다. 그 감정이 평생 무의식 속에 숨어서 요동을 치며 사회의 제도나 인간에게 독기를 뿜어댄다. 나는 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어릴 때 각인(刻印)된 종소리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아직도 변치 않고 내 가슴에 남아 그 종교의 신자는 아니라도 우호적인 감정이 지속되고 있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성공회(聖公會) 성당이 있었는데 새벽이면 종을 쳤다. 어쩌다 악몽에 시달리다 깬 날이나 낮에는 들리지 않던 벽상의 괘종(掛鐘)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두렵던 그런 새벽 성당의 종소리가 때 맞춰 울리면 하느님의 다정한 위안의 목소리가 되고 따뜻한 손길이 되었다. 동문시장 옆에 있던 성공회 성당은 그 자리에 남아 있지만 어색한 모습으로 변해 내 생가 그 동네는 동문시장도 없어지고 성당의 종각마저도 없어진 타향이 되었다.

옛 종소리가 그리울 때면 가끔 왜관 가실성당을 찾는다. 그 곳에서 "빌딩의그림자 황혼이 짙어갈 때, 성스럽게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 걸어온 발자욱마다 눈물 고인 내 청춘, 죄많은 과거사를 뉘우쳐 울적에, 아! 산타마리아의 종이 울린다."(미사의 종, 전오승 작사, 작곡, 나애심 노래)을 흥얼거리며 없어져 버린 고향의 한 조각 퍼즐을 찾아본다. 외로운 대학생에게 은총(恩寵)이 종소리 되어 다가온 하느님의 목소리, 새벽 두려움에 떨던 소년을 감싸주던 그 임의 따사로운 손길은 다시 들을 수 없는 흘러간 꿈 의 메아리인가!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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