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새 학년을 맞은 교실에 커다란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복병은 바로 과잉행동장애로 수업 진행을 어렵게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수시로 폭력을 가하는 범수(가명)였다.
협력학습을 통해 서로 돕고 배려하는 학급을 꾸려나가고 싶었는데, 협력학습은커녕 범수에게 기본적인 학습 태도조차 가르쳐줄 수 없었다.
범수는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의 학용품을 가져가고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수업을 방해했다. 모든 학생들이 범수를 위해 양보하고 참아야 했다. 마음이 아픈 아이니까. 교직 경력 20년이 넘었지만 정말 낯선 수업 분위기였다.
더욱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범수의 폭력성이었다. 친구들에게 가위나 우산으로 불쑥불쑥 위협하는 행동은 결국 다른 학부모들의 원성을 샀다.
학부모들은 우려 끝에 번갈아가며 담임인 내게 전화를 해왔다. 범수의 병은 안타깝지만, 우리 반 친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 어떤 노력도 범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우울하고 답답한 날들이었다.
행복한 소식은 2학기에 찾아왔다. 1수업 2교사제를 시범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운영 계획서를 냈고, 하늘의 별 따기만큼 구하기 어렵다는 협력교사가 우리 반에 배정됐다.
우리 학급에 온 협력교사는 참 노련하신 분이었다. 30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2년 전 명예퇴직을 한 분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뒤 그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내가 범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학생이 변하지 않으니 보람을 못 느끼겠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른 부진 학생들도 도와주면서 협력교사로 남아 주십사 간절히 부탁드렸다.
범수에게 변화가 온 것은 협력교사가 온 지 한 달쯤 지나서였다. 무엇이 범수의 변화를 가져왔을까? 가장 큰 이유는 협력교사와 담임교사의 협력수업, 말 그대로 '1수업 2교사제'였다. 매일 범수에 대해 의논하고 관찰한 결과를 서로 나누고 다음 날 적용해 볼 생활교육 전략을 짜며 방법을 모색했다.
내가 전체 수업을 진행할 때는 협력교사가 범수를 붙들고 가르쳤고, 내가 범수와 상담하고 생활교육에 매달릴 때는 협력교사가 나머지 학생들을 인솔해서 급식 지도를 했다.
둘이라서 가능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니 범수의 수업 태도가 갈수록 좋아졌다. 줄 서기의 규칙을 이해하게 됐고 틱 증상으로 인해 어려웠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지 않고 모둠활동에도 참여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 않다. 과잉행동장애는 단시간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작은 변화가 너무 고맙고, 교사로서의 행복감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협력교사가 없을 때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협력선생님이 계셔서 어떤 점이 제일 좋니?" 아이들은 선생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좋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작은 일에도 크게 감사하고 감동하며 큰 액션으로 칭찬해주셨다. 그분이 다시 그립다. '1수업 2교사제'는 교사로서 보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고마운 교육정책이라 생각하며, 함께 마음 모아 지도해 준 협력교사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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