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정부도 알았나

이호준 경북부장
이호준 경북부장

2017년 11월 15일. 포항 시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을 뒤흔들어 이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몸 누일 곳 없어진 이들은 이재민이라는 이름으로 체육관 등 대피소로 향해야 했다.

발생한 이재민만 1만8천 명. 이들 중 200여 명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흥해 실내체육관 등 대피소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당시 지진으로 발생한 파손 시설만 주택, 공장, 도로, 항만, 학교 등 5만 건, 공식 피해액만 846억원으로 집계됐다. 직간접적인 피해까지 합하면 3천323억원에 달한다.

재산상 피해는 물론 포항 시민들은 공포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인 고통도 겪고 있다. 그러나 지진이 인간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라는 생각에 지난 16개월 동안 어디 하소연 한 번 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삼켜야 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을 촉발했다'는 내용의 포항지진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이날 '촉발'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을 일으켰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포항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예방할 수 있었던 지진이었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포항지진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와 경고는 여러 차례 있었다. 포항 지열발전소 건립 기술개발 초기 단계 당시 '지열발전이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의 사례와 경고가 있었지만 외면했다. 스위스 바젤은 규모 3.4 지진 발생 후 공사를 멈췄고, 연구·분석 후 지열발전소 건설을 중단했다.

그러나 포항 지열발전소는 사업을 강행했다. 2012년 9월 착공해 2016년 6월 1차 설비 완공하고 시운전에 들어갔다. 그해 12월 두 차례에 걸친 땅속 물 주입 작업 후 규모 2.2, 2.3의 지진이 잇따랐고, 2017년 4월에도 이러한 현상이 반복됐지만 역시 무시했다.

특히 2017년 4월 물 주입 후엔 스위스 바젤과 비슷한 규모의 3.1 지진이 발생했지만 바젤과 달리 포항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포항지진 발생 3개월 전엔 물 주입 신기술까지 적용해 포항 땅속에 물을 넣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포항이 지진 발생 위험 지각 지진대에 속해 있어 충격과 자극을 줘서는 안 되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의 무모함 앞에 포항과 포항 시민들은 마루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정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것이다. 이러한 지진 위험성을 알고도 포항에 지열발전소를 세우기로 했고, 지진이 잇따르는 것을 알고도 계속 진행하도록 했다면 범죄자에 다름 아니다.

물 주입 등 지열발전 실증시설 운영으로 지진이 발생할 경우 규모별로 보고받게 돼 있는 데도 이를 몰랐다면 직무 유기다. 보고를 받아 위험성을 알면서도 계속 진행하게 했다면 '지진 촉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방조한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석고대죄의 자세로 포항 시민 앞에 사죄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한다. 포항지진보다 더 무서운 포항 민심이 폭발 위기에 직면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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