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좋아하는 준혁이는 혼자서 그림을 그렸다. 언젠가 한번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매번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고, 특히 대회에 앞서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했다. 그게 싫었던 준혁이는 미술 대회에서 학원에서 연습한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그린 그림을 제출했고 준혁이는 상을 받지 못했다. 연습한 것을 그려 제출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이 누군가의 검열을 받고 질책을 받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은 준혁이가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봄과 함께 어린이 미술 공모전의 시즌이 왔다. 많은 학원에서 선생님들은 여러 종류의 공모전을 준비하는 일에 바빠지고, 아이들 또한 선생님들이 구성한 그림을 외우는 일에 바빠진다. 소도시에서 큰 규모의 어린이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은 미술 대회에서 아이들에게 상을 받아주지 않으면 학원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말은 대회에서의 입상을 위해 교사가 구성한 그림을 아이들이 따라 그리게 하고 외우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습관이 된 아이들은 자신이 다루어 보지 않은 주제가 제시될 경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폐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설 교육 현장에서 행해지는 수업 방식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사장시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부모님들 또한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주고자 하는 이유로, 그렇게 받아 온 명예롭지 않은 상장을 묵인한다. 재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하기 위한 공모전의 본래 취지와 달리 상당수 미술 공모(公募)전이 어른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공모(共謀)의 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인 듯하다. 이러한 순환의 원인에는 그림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의 선별 방식 또한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 어른들의 생각을 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매년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해야 하는지, 그걸 하는 의미가 무언지 모르겠어요."
이 말은 이제 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다. 교육에 있어 어른들의 개입은 지나치다 못해 때로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은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순수성과 창조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아랑곳없는 무책임한 교육 현실은 아이들의 삶 전반에 스며들어 그들의 가치관을 흔들고 있다.
이 같은 순환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공모전에서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위원들의 통찰력 있는 눈으로 어른의 개입이 들어간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구별해서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의 그림에 교사들의 개입은 줄어들 것이고, 부모님들은 아이가 받아온 정직한 상장에 대해 안심하고 칭찬과 격려를 줄 수 있을 것이고, 아이 또한 자신의 성과에 정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쪽으로 흐른다. 오늘의 교육 현실이 우리의 동의만큼의 결과라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 질문 속에 항상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오류를 바로잡아갈 수 있고, 교육은 진실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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