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키다리 아저씨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월 15일은 중요한 날이다. 중간점검일도 아니고 월급날은 더더욱 아니다.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해 책상 위에 메모해 둘 만큼 깜박하면 안된다. 이 날은 한 후원자가 대구예총에 기탁, 지정한 성악가의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는 날이다. 대구예총 통장은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덩달아 뿌듯해지는 시간이다.

어쩌다 기부도 쉽지 않은데 매월 정기적으로 적잖은 금액을 후원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릴 적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며 여주인공 쥬디를 부러워 했었다. 물적 심적으로 든든한, 더군다나 키도 큰 롱다리 후원자가 쥬디의 꿈을 키워줬으니. 익명은 아니지만 키다리 아저씨처럼 예술인들에게 조력자가 되어 주는 사람을 '패트런', 기업을 '메세나'라고 부른다.

패트런(patron)은 pater(아버지)에서 유래된 라틴어가 어원이다. 우수한 예술가의 재능을 인정해 기꺼이 보호자가 된 사람들이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알아 본 교황도 패트런이다. 우리나라 역시 안평대군이나 신재효 같은 패트런이 없었다면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판소리 열두마당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어인 메세나(mecenat)는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기업들의 활동을 뜻한다.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트 황제의 대신인 가이우스 마이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마이케나스는 당시 문화계를 이끈 예술인들의 열렬한 후원자로 예술부국을 이끌었다고 한다.

삶이 윤택해지고 예술꽃을 피우려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부이든 어떤 형태로라도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 대구예총은 건축, 국악, 무용, 문인, 미술, 사진, 연극, 연예, 영화, 음악 등 10개의 예술문화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비영리 단체인 예총의 재원 조성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 중 아트 메세나의 후원금은 재원 마련에 있어 가뭄의 단비가 된다.

경기침체와 장기불황 속 메세나 활동은 수익보다 지출을 양산한다. 일부에서는 기업체의 미술품 후원을 투기로 보기도 한다. 문화접대비도 위축되었다. 그나마 미술품 구입시 세제 혜택이 개선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패트런이나 메세나는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아직은 '사회 환원'을 내세우는 기업 의존률이 높지만 미술 소품을 사고 공연을 관람하는 등 예술소비 행위는 개인후원자의 소중한 습관이다. 무료 티켓이 익숙한 예술현장에서는 감상 후 소액이라도 기부하는 방법도 좋겠다. 예술인을 발굴해 지원하면 그 예술인은 다시 시민들에게 재능을 나눌 것이다. 맛깔난 저녁식사에 공연 한 편을 패키지로 묶어 접대하는 것,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책을 사는 일로도 훈훈한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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