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오는 봄바람에 반짝이는 연두색 잎사귀들. 천지가 따듯한 기운으로 가득한데 마음 한 켠, 비어 있는 자리가 쓸쓸하고 그저 죄송스럽기만 하여 울컥하고 올라오는 눈물은 애써 삼켜 버린다. 5월 3일은 소리 삶을 살게 해주신 또 한분의 어머니,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고 이명희 선생님의 49재가 있는 날이다.
경상도 사람으로 결코 쉽지 않은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 수상으로 명창의 반열에 올라 KBS 국악대상, 세계문화예술대상, 금복문화상, 대구광역시 문화상, 판소리계 최고 권위의 동리대상 수상 등 그 경력을 인정받아 2017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받으셨다. 불모지 영남지역의 단절된 판소리 계승, 전승을 위해 오랫동안 사단법인 영남판소리보존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대구국악제를 이끌어 오셨으며 17, 18회 대구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대구국악인의 수장으로 대구 지역 최초 대통령상을 유치하셨다. 지도자이며 선구자였던 선생님 덕분에 지역의 국악인, 예술인의 삶이 한 뼘 성장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수경이 너 이야기를 한다.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는 말씀에 무작정 기쁘기도 했지만 자주 찾아뵙고 살뜰히 모시지 못한 못난 제자가 이렇게라도 선생님께 보답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어야지. 마음먹고 도리어 힘을 얻기도 했는데… 갑작스런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처음 뵈었던 선생님 모습부터 소리를 하는 동안 웃고 울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고등학생 시절, 취미로 배워 보고자 찾아 갔던 곳이 이명희 판소리 연구소였다. 목소리 한번 들어보자시며 받는 첫 레슨의 긴장과 설렘. 빛나고 매서웠던 선생님의 눈빛,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맑고 힘이 넘치는 성음 모든 것이 새삼 생생한데…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 얼른 찾아 봬야지하고 마음만 앞설 뿐 행동하지 못한 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해버렸다. 먹먹한 가슴을 쳐보고 시간을 돌리고 싶다 수없이 생각하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다.
시작하면 끝을 보셔야 했던 강건함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셨던 여장부. 작은 일에는 크게 감동하고 큰일은 대범하게 넘기시던 작은 거인, 한편으론 소녀 같이 여리고 정에 약하셨던 선생님. 그래서 호된 회초리 같기도 하고 또 보드라운 손수건 같기도 했던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잊을 수 없지요.
소리공부 좀 하라시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전해주고 가신 소리, 성음, 맵시 잘 다듬고 다듬어 열어주신 소리 삶 열심히 살아내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게요. 제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 선생님.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요.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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