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당시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속에서 악마의 형상을 봤다고 주장했다.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인간은 무작위적인 패턴에서 구체적인 패턴을 찾아낸다.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생존 기술 중 하나다. 수풀이 움직이면 일단 달아나는데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포식자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왜 수풀이 움직이는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늦다.
전문 용어를 빌리자면 패턴이 없는데 있다고 인식하는 '양성반응 오류'의 피해가 패턴이 있는데 없다고 인식하는 '음성반응 오류'의 피해보다 작았으며, 그 결과 구체성보다 민감도를 높이는 패턴 인식이 진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방법을 '휴리스틱'(어림짐작)이라고 한다. 이는 때로는 오판을 낳기도 하지만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불완전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다.
휴리스틱은 전쟁에서도 유효할 수 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적의 의도를 신속히 알아내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난점을 해소하는 방법은 적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공격 의도라고 '간주'하고 즉시 대응 태세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해서 손해 보는 것은 비상대기에 따른 공포나 긴장뿐이다. 아무 일도 없으면 맥이 빠지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앉아서 당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4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군 당국이 즉시 '미사일'이라고 발표한 것은 적절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참으로 이상했다. 40분 뒤에는 '발사체'로, 다음 날에는 '전술유도무기'로 바뀌었다. 오전 9시에 발사했으니 '도발'이 아니라고도 했고, 발사체가 무엇인지도 여전히 '분석 중'이라고 한다.
왜 이러는지 의아했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대북 식량 지원 때문인 듯하다. 발사체가 미사일이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대북제재에 걸려 식량 지원을 못하게 된다. 결국 국민은 지난 4일부터 지금까지 '기승전 대북 식량 지원'이라는 시나리오의 저질 연극을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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