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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창의성] 6월의 나무: 가래나무, 재목에 어울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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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時)는 모든 생명체에게 아주 중요하다. 때를 아는가의 여부가 생명체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일은 알맞은 때에 진행해야 한다. 적당한 때는 생명체마다 다르다. 모든 식물의 꽃은 오로지 제때에 핀다. 그러나 사람들은 식물의 꽃이 피는 시기를 마음대로 이해한다. 매화는 일찍, 무궁화는 늦게 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기를 예보하면서 꽃이 피는 시기를 작년과 비교하면서 알려준다. 일기 예보자는 기후온난화로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졌다는 얘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체의 때는 어떤 경우에도 비교할 수 없다. 봄에 피는 매화와 여름에 피는 무궁화는 오로지 그 나무의 조건에 따라 필 뿐이다.

그래서 식물의 꽃은 일찍 피지도 않고 늦게 피지도 않는다. 오로지 모든 식물의 꽃은 제때 필 뿐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한다.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은 싹튼다.

'회남자'는 6월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때로 보았다. 회남자는 6월에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달에는 나무가 바야흐로 무성하게 자라는 시기이니, 벌목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제후들을 모아 토목공사를 일으켜서도 안 된다. 만약 백성을 동원하고 군대를 일으킨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이달에 흙은 축축하고 날씨는 찌는 듯이 더우며 때때로 큰 비가 내리니,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 좋다."

회남자의 내용은 '농사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농불실시'(農不失時) 철학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철학은 '맹자·양혜왕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맹자는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 물고기, 목재 등을 충분히 사용하고도 남아서 백성이 살아 있는 자를 봉양하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맹자는 이 같은 조건을 왕도 정치의 시작이라 보았다. 왕도 정치는 힘으로 하는 정치가 아니라 '인과 의' 같은 도덕으로 정치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의 왕도 철학은 힘센 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중국 전국시대의 새로운 정치 철학이었다. 때를 잃지 않고 제때에 농사를 지어야만 풍년을 맞이할 수 있듯이 정치도 때를 놓치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회남자에서 6월의 나무로 선정한 가래나무도 농경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가래나무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나무를 농기구 가래를 만드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생겼을지 모른다. 가래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가래나무의 한자는 재(梓)와 추(楸)다. 경상도에서는 호두나무도 추자나무라고 부른다.

추는 능소화과의 개오동나무를 일컫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홍천의 가리산, 경남 통영의 추도 등에서 보듯이 가래나무를 지명에 사용했다. 지명에까지 등장할 정도면 이 나무의 쓰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래나무는 나무의 왕, 즉 목왕이라 불릴 만큼 농경사회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과 한국의 농경사회에서 가래나무를 크게 아낀 것은 이 나무의 재질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래나무는 천자의 관을 만들거나 서적을 간행할 때 사용한 판목에 사용되었다. 중국 남북조시대 임방이 쓴 '술이기'에 따르면, 가래나무의 정령이 푸른 양으로 변해 100년은 홍색, 500년은 황색, 500년은 푸른색, 500년은 흰색으로 살았다.

중국과 한국에서 가래나무를 소중하게 여긴 것은 목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 유종원의 '재인전'에서 보듯이 가래나무는 대목수를 의미한다. 유종원은 재인을 정승에 비유했다. 나무의 재질에 따라 쓰임이 다르듯이 시람도 재목에 따라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재질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판권(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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