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질환으로 고생한 어느 고양이의 이야기다.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소설 '고양이로소이다' 를 각색해 고양이의 시점으로 구강질환의 고충을 묘사했다.
◆고양이로소이다 - 구강질환 편
내 이름은 페르시안 블루. 전생에는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생에서는 고양이로 태어났다. 경박한 인간의 걸음걸이와 다른 나의 우아한 캣워킹을 보면 나는 환생하기 전에도 고양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나의 날렵한 움직임을 비추어볼 때 사바나 또는 아세라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인간이란 종족은 참 어리석다. 세상만사 '잘 먹으면 잘 산다' '먹는 게 남는 거다'라는 진리를 모르고 쓸 데 없는 일에만 집중한다. 돈을 벌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만한 행복이 없는데 참 복잡하게 사는 것 같다. 우리 고양이들처럼 포근한 낮잠을 즐기거나 먹을 것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내면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이 없는데 인간은 왜 사서 병을 얻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열심히 돈을 버는 것도 잘 살기 위함일 텐데. 옆에서 보면 인간만큼 한심한 동물이 없다.
물론 품격 있는 고양이로 태어나서 힘든 점도 많다. 위대한 유전자를 타고 난 덕분에 가려야 하는 음식도 참 많은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달콤한 초콜릿을 먹지 못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뛰어난 후각은 때로는 고문이 될 때가 많다. 두 해 전 달달한 초콜릿 향을 맡고선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날 저녁 배가 찢어질 듯 아파 밤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나와 함께 사는 인간들은 이 일로 단단히 화가 난 듯 했다. 내 손이 뻗을 만한 곳에 초콜릿을 둔 것에 서로 책임을 추궁하며 싸웠다. 자유자재로 천장과 바닥을 오가는 고양이의 위대함을 인간들이 어찌 알까? 나도 이날 이후로 인간들이 항상 갖다 바치는 사료 외에는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원인 모를 체중감소, 이유는 구내염
어느 날 문득, 나의 인생에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입천장에서 목구멍까지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고 등이 찌릿찌릿 저렸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았는데 결국 음식을 씹는 것도 삼키기도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머릿 속으로 '잘 먹는 게 잘 사는 거다'라고 되뇌었지만 극도의 고통이 지속되었다. 함께 사는 인간들도 처음에는 무심경하더니 내가 곡기를 끊자 이때부터 걱정을 하는 듯 했다. 평소엔 주지도 않던 고기 통조림을 주질 않나 뭐가 들어간 건지 평소 같으면 몇 그릇을 비웠을 맛있는 음식을 코앞에 대령했다. 건강을 잃으면 끝장이다. 맛있는 음식도 삼키기가 힘드니까 먹을 턱이 있나. 급기야 나의 갈비뼈가 뱃가죽을 뚫을 듯 야위었고 인간들은 나를 병원으로 모셨다.
수의사 양반은 대뜸 내 입을 벌려 속을 훑어보았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양반이군.' 몸에 기운이 없으니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아 내 몸을 수의사에게 맡겼다. 엑스레이 촬영부터 피검사까지 성가신 검사를 마치고 나니까 인간들은 내 병명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구내염입니다. 고양이의 구내염은 초기엔 식욕도 정상이고 구강에 통증이 없어 발견이 힘들지요. 구내염을 장기적으로 치료하고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일단 오늘은 이빨 두 개를 뽑아야 합니다." 수술대로 옮겨진 나는 주사를 맞고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나의 소중한 이빨 두 개가 사라져 입안에 공백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인간들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손가락으로 내 목구멍 속으로 약을 밀어 넣었고 나는 반항의 표시로 몇 번 이것을 토해냈다. 때론 인간들이 대단한 근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무식하게 힘만 세다고 여겨왔는데 그 힘으로 나를 제압한 덕분에 내 몸에 차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계속 토해내며 먹기를 거부한 약도 효과가 좋으니 나중에는 언제 가져다주나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간이 약을 가져오면 못이긴 척 받아먹었다. 내 입속을 훑어보진 못하지만 인간들이 하는 얘길 들어보면 검붉게 변했던 내 입천장이 다시 선홍빛으로 돌아왔으며 잇몸 출혈도 줄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 고양이들은 표현에 서툴다. 아니,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헤프게 짖어대는 강아지처럼 일일이 '아프다' '좋다' 의사표시를 하질 않는다. 고양이라는 동물이 강직한 품성과 고상함을 타고난 걸 어찌하겠는가. 인간들을 잘 돌본 덕분에 이번 구내염 해프닝은 잘 넘어갔다.
※자문. 위드동물병원(반려동물 치과 전문) 김대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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